해외여행/일본(2019)

오키나와 여행기(7일차, 2019.8.5.월)-[나하시] 슈리성, 옥릉

anna325 2022. 9. 23. 10:14

(이 글에서 설명은 '프렌즈 오키나와-전명윤, 김영남'을 참고하여 썼다.)

 

오늘은 슈리성을 보러 가는 날. 

 

역시나 아침은 호텔 조식 뷔페로 시작한다. 어제 많이 걸어서 무척 피곤했는데 그래도 조식은 포기할 수 없지. 아침 7시 30분쯤 호텔 1층으로 내려왔더니 이미 많은 사람들이 식사를 하고 있었다. 1차는 언제나처럼 밥과 반찬으로 시작했다. 만두, 튀김, 햄과 여주가 들어간 오일 스파게티, 고등어 구이 한 쪽, 단무지를 비롯한 밑반찬 종류, 오키나와에서 많이 나는 해조류인 모즈쿠(큰실말), 오키나와 소바, 미역과 유부가 들어간 미소 된장국까지 야무지게 가져왔다. 다행히 이 호텔 조식 뷔페도 맛이 좋았다. 역시 음식이 맛있으면 언제 어디서든 행복한 기분이 든다.

 

2차는 아메리칸 스타일로 크로아상을 비롯한 빵, 시리얼, 생크림 케이크, 초코 케이크, 빵에 발라 먹을 오렌지잼, 딸기잼 등의 잼 종류, 인절미처럼 생긴 떡, 파인애플, 그리고 마실거리인 주스와 우유도 가져왔다. 빵 맛은 말해 무엇하랴! 세계 어느 나라를 가든 빵과 케이크는 일단 달콤한 맛으로 승부하는 음식이 아니었던가!

오늘 아침 식사도 아주 만족스러웠다.

 

슈리성까지는 모노레일을 타고 가기로 했다. '겐초마에역'에서 모노레일을 타고 '슈리역'에서 내려 도보로 15분 정도 걸으면 슈리성이 나온다. 15분이면 약 1km 정도 되는데 날이 더워서 그런지 걸어가는데 좀 힘이 들었다. 그래도 비도 오지 않고 하늘이 맑아서 다행이었다.

슈리성은 1429년 쇼씨 왕조가 오키나와 일대를 통일한 후, 일본에 편입된 1879년까지 약 450년간 류큐 왕국의 정궁이었던 곳이다. 구스쿠라고 하는 오키나와 특유의 성곽 양식에 중국과 일본의 궁전 건축 양식이 혼합된 슈리성은 상당히 개성 넘치는 모습을 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슈리성은 그동안 오키나와가 겪은 우여곡절만큼이나 시련이 많았던 성이다.

첫번째 시련은 류큐 왕국 시절인 1453년, 왕위 다툼인 시로·후리의 난(志魯·布里の乱) 당시 슈리성이 불타 없어진 적이 있다고 한다.

두번째 시련은 오키나와 전투가 벌어지던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육군 제32군은 슈리성을 총사령부로 사용했는데 1945년 5월 초, 미군의 나하 폭격이 본격화되며 무려 3일에 걸친 함포 사격을 받아 슈리성은 흔적도 없이 소실되어 버렸다. 전쟁 이후 미국의 지배를 받았는데 그래도 슈리성 복원에 대한 염원은 간절했다. 다행히 1972년 오키나와가 다시 일본에 반환되며 전기를 마련했다. 오키나와 대학을 이전하여 그 자리에 슈리성을 복원하다는 장기 계획을 발표했고 우여곡절 끝에 1989년, 드디어 슈리성 복원 공사가 시작되었다. 일본 각지에서 공예가와 장인들이 몰려들었고, 류큐 기와를 복원하기 위해 지역 사회의 예술가들이 한데 힘을 모았다. 1992년 11월 2일, 4년여의 공기 끝에 궁전은 슈리성 공원이라는 이름으로 개장했고 오키나와의 자존심은 50년 만에 다시 제자리를 찾았다.

하지만 우리가 관람을 한 이후, 2019년 10월 31일에 대형 화재가 발생해 정전이 전소하는 등 막대한 피해를 입게 되는 세번째 시련을 겪었다. 지금도 복원 공사가 진행 중이라고 하는데 정전의 기와나 기둥 등 복원에 필요한 기술자들이 전보다 많이 줄어들어 복원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릴 것이라고 한다.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어쨌든 이래저래 우여곡절이 많은 궁궐이다. 

 

성에 들어가 제일 먼저 소노향 우타키 석문을 보았다. 우타키는 오키나와의 전통 신앙에서 가장 중요한 곳 중 하나로 신이 내려오는 곳이라 여겨 참배를 드릴 수 있는 곳이라 한다. 이 우타키는 왕들만 출입할 수 있는 일종의 참배 공간이었는데 성 밖을 나갈 때면 어김없이 이곳에 들러 신에게 참배를 했다고 한다. 현재는 당시 참배 장소였던 문 안쪽의 숲으로는 들어갈 수 없고 밖에서 석문만 감상할 수 있다. 이 곳이 중요한 이유는 슈리성 안에 남아있는 유적 중에 몇 안 되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기 때문이다.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오키나와 전투 때 파괴되었지만 복원 과정에서 과거의 잔해들을 모두 활용하여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고 한다. 

 

이제 진짜 성 안을 돌아볼 차례이다. 매표소로 가는 길이 꽤 길었는데 잔디도 심어 놓고 길도 납작한 돌로 편평하게 잘 만들어 놓아 관리가 잘 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계단이 가파르지 않고 위, 아래 간격이 넓어서 노약자나 임산부, 아이들도 그리 힘들지 않게 오르내릴 수 있어서 좋았다. 사람들이 올라가고 있는 저 계단을 지나 문으로 들어가면 매표소가 나온다.

파란 하늘, 초록초록한 잔디밭과 나무, 붉은색 지붕이 어우러져 엽서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은 아름다운 슈리성 길을 걷다보니 마음이 설렜다. 두근두근, 성 안에는 어떤 볼거리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까? 

 

드디어 매표소에 도착했다. 슈리성은 특이하게 매표소가 궁궐의 제일 바깥 쪽에 있는 문 앞에 있지 않고 문을 지나 한참 길을 따라 들어와서 오밀조밀 건물이 모여있는 이 곳으로  들어와야 있다. 나중에 알고보니 슈리성은 정전을 돌아보는 것만 유료이고 나머지 성 안을 둘러보는 것은 무료라고 한다. 슈리성 입장료는 1인당 820엔(8,954원)이었다. 우리나라 궁궐 입장료와 비교해보면 많이 비싼 듯 하다. 입장권을 사고 화장실을 다녀온 후 날씨가 너무 더워서 매표소 근처 건물 안에 있는 매점 겸 쉼터에서 잠깐 쉬었다 가기로 했다. 쉼터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쉬고 있어서 자리가 별로 없었지만 여기저기 둘러보아 비어 있는 자리를 찾아 앉았다. 에어컨을 틀어 놓아서 무척 시원했다. 엄마는 피곤하셨는지 쪽마루 같은 곳에 자리를 잡고 모로 누워 잠깐 눈을 붙이셨다.

 

한참을 쉬다가 이제 본격적으로 슈리성 구경을 나섰다. 이 곳은 정전으로 가는 길에 있었던 '슈리숲 우타키'이다. 신이 직접 만든 일곱 개의 우타키 중 하나로, 류큐 신화에 등장하는 우타키 중 가장 중요한 우타키로 꼽힌다. 슈리성 내에는 이 곳 외에 아홉 개의 우타키가 더 있는데 슈리숲 우타키의 권위가 가장 높았다고 한다. 

 

우타키를 지나 드디어 슈리성의 중심, 정전에 도착했다. 중국의 자금성이나 우리나라 경복궁처럼 규모가 크지는 않았지만 슈리성 내에서는 가장 웅장하고 화려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이 곳은 류큐 왕국의 상징으로 국왕이 머물며 정사를 보살피던 곳이다. 류큐 건축의 아름다움이 집대성된 2층의 목조 건물로 오키나와에서 가장 큰 목조 건물이라고 한다.

정전은 중국 베이징에 있는 자금성의 태화전을 모델로 했지만 시대를 거치며 오키나와 특유의 양식으로 변해서 지금은 오키나와 건축물의 매력이 한껏 돋보이는 건물이 되었다. 특히 전각을 2층으로 만든 점이 특이하다. 일반적으로 중국이나 한국의 왕조들은 천장이 높은 단층의 전각을 선호했는데 이는 천장이 높아야 왕의 음성이 메아리쳐 권위가 실린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또한 천장을 다양한 조각으로 수놓아 위압감을 주는 게 일반적이라고 한다.

두 번째 특징은 아치형 입구와 금박으로 된 용 문양의 기둥이다. 이 또한 오키나와 슈리성에서만 볼 수 있는 스타일로, 중국의 자금성이나 천단에도 이런 금박 기둥이 있긴 한데, 대부분 전각의 내부에 배치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슈리성 정전은 외장을 화려한 금박 용 문양으로 치장을 해 왕의 권위를 살리고자 하였다.

실제로 보니 정전 입구가 정말로 무척 화려했다. 류큐 왕국의 국력 상 웅장한 궁전 공사는 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왕의 권력을 내세우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 흔적이 여기저기서 보였다.

 

정전 내부에 들어갈 때에는 정문을 이용하지 않고 정전 오른쪽에 있는 작은 누각인 난덴을 이용해야 한다. 정전은 신발을 신고 볼 수 없는 곳이라 난덴으로 들어가 신발을 벗고 슈리성 측에서 주는 신발 주머니에 넣었다.

난덴을 통해 들어가 관람로를 따라 가면 국왕의 개인 집무실과 서원, 그리고 태자의 거처로 쓰이던 구역이 차례로 나오기 때문에 순서대로 관람을 하면 된다. 위의 사진은 옛날 류큐 왕국 시절에 왕과 신하들이 모여 설날에 했던 '조배어규식'이라는 정월 의식의 모습을 모형으로 만들어 놓은 전시물이다. 왕과 신하가 모이는 모습은 우리나라나 류큐 왕국이나 비슷한 것 같다.

 

이 모형은 중국의 황제가 류큐 국왕을 임명하는 책봉 의식 모형이다. 힘이 없는 나라이다보니 중국의 허락을 받아 왕을 임명할 수 있었나 보다. 하긴 우리나라도 고려와 조선 시대에 잠깐 중국의 허락을 받아 왕을 임명했던 시대가 있긴 했었다. 힘없는 나라의 숙명과도 같은 설움이라 할 수 있겠다.

 

관람로를 따라 가다 보니 복도 문 밖으로 이런 정원의 모습도 보였다. 소나무가 가지런하게 정리되어 있었고 잔디와 화초, 바위 등이 조화롭게 잘 정돈되어 있었다. 오늘 날씨가 좋아서 바깥 풍경이 빛을 받아 더욱 아름다워 보였다.

 

이 곳은  '대고리'라고 불리는 2층이다. 국왕과 왕족의 사적 공간으로 성내에서 가장 화려하다. 국왕과 왕의 친족, 여자 사제들만 이용했던 곳으로 특히 남성의 경우 허용된 몇몇을 제외하고는 출입이 금지된 공간이었다. 어좌 주변은 정전의 입구와 마찬가지로 금박 용기둥과 대룡주라 불리는 용이 조각된 장식 기둥이 있었다. 원래 용은 5개의 발톱을 가지고 있는데 슈리성의 용은 발톱이 4개뿐이다. 그 시대 용은 중국 황제를 상징하는 동물이라 황제보다는 한 단계 낮음을 나타내야 했는데 오키나와 백성들에게는 류큐 왕이 용을 사용할 수 있는 절대 권위자라는 점을 과시해야 했기 때문에 용의 발톱을 4개만 나타내 눈속임을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왕이 쓰던 왕관이다. 반짝거리는 구슬 같은 것은 아마도 옥인 것 같고 중간에 꽂은 비녀와 테두리는 금으로 장식한 것 같다. 왕관답게 무척 화려하다.

 

대고리 관람을 마치고 나서 류큐 왕국의 전통 차와 과자를 파는 카페에 가 보았다. 창문이 커서 푸릇푸릇한 정원이 한 눈에 들어오고 바닥에는 다다미가 깔려 있는 전통적인 일본식 구조의 카페였다. 체험비가 1인당 310엔(3,385원)으로 저렴해서 좋았다.

우선 차는 산핀차가 나오는데 우리가 알고 있는 자스민차이다. 산핀차는 약 600년 전에 중국에서 전해졌는데 중국어의 '샨펜'이 변해서 '산핀'이라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오키나와에서는 녹차나 우롱차보다도 인기가 있어 가장 많이 마시는 차이다. 나도 자스민차를 좋아하는데 마침 잘 되었다. 

과자는 네 종류가 나오는데 하나보우루, 쿤펜, 치이룬코, 친스코가 나온다.

하나보우루(위 쪽에 밝은 색의 구멍 뚫린 과자)는 난황, 설탕, 밀가루로 만든 피를 직사각형 모양으로 늘리고 거기에 칼집을 내 모양을 만들어 구운 과자로 옛날에는 에도에서도 많이 먹었다. 현재는 이렇게 예쁘게 칼집을 넣은 것은 오키나와밖에 남아 있지 않다고 한다.

쿤펜(속에 앙금처럼 참깨 소를 넣은 과자)은 난황, 설탕, 밀가루로 만든 피에 참깨 소를 넣고 편평한 원형으로 모양을 만들어 구운 류큐 왕국을 대표하는 과자이다. 옛날에는 책봉사를 환대하는 요리나 제사에 사용되었던 격조 높은 과자였다. 현재는 일상적으로 먹거나 제사 때 먹는 과자로 사용되고 있다.

치이룬코(맨 위에 하얀색 바탕에 붉은 색 장식이 있는 과자)는 계란을 듬뿍 사용하며 표면에 빨갛게 물들인 땅콩과 킷판으로 장식한 화려한 외관의 찐 과자이다. 오래 전에는 달걀 노른자만 사용했는데 지금은 흰자도 조금 사용하여 부드러운 식감을 준다고 한다. 또 예전에는 빨갛게 물들인 땅콩이나 킷판을 나무틀 밑바닥에 깔고, 생지를 부어서 찐 다음, 그것을 뒤집어서 장식이 위에 오도록 만들었는데 지금은 흰자가 들어가 부풀기 때문에 뒤집지 않고 그대로 위에 장식을 한다고 한다.

친스코(하나보우루 밑에 있는 과자)는 굳은 라드와 설탕을 잘 섞고 거기에 밀가루를 넣어 피를 만든 다음, 모양틀로 찍어 내 구운 과자이다. 류큐 왕국 시대부터 만들어졌던 역사 깊은 과자이고 지금도 오키나와를 대표하는 향토 과자이다. 왕국 시대에는 국화꽃 모양이었는데 지금은 먹기 쉽도록 가늘고 긴 모양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자리를 잡고 앉아 있으면 직원이 다과가 담긴 쟁반을 가져다 주고 영어로 차와 과자에 대해서 설명도 해준다. 설명이 끝나고 엄마와 같이 차과 과자를 먹으며 창밖의 풍경을 감상했다. 자스민차도 향기롭고 과자들도 네 가지 다 달콤하고 맛있었다. 무엇보다 창밖으로 정원을 감상하며 먹으니 더욱 운치있고 고즈넉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창밖으로 예쁘게 자란 소나무와 현무암 바위, 그리고 바위 틈에서 자라는 풀들이 보였다.

카페에서 다과 체험까지 다 한 후에 '하고리'라고 불리는 정전의 1층도 돌아보았다. 이 곳은 왕이 실제로 정무를 보던 곳으로 101개나 되는 기둥이 있다고 하는데 2층에 비해 어좌의 화려함도 덜해 그렇게 인상적이진 않았다. 다만 어좌 정면 쪽에 바닥이 유리로 된 공간이 있는데 밑을 내려다 보면 건물의 터를 다진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어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모습이 볼 만 했다. 

 

1층까지 구경을 다 하고 밖으로 나와 정전의 뒷쪽으로 가보기로 했다. 하얀색 화강암으로 각을 맞추어 쌓아 놓은 계단과 난간, 그리고 성벽과 파란 하늘, 잎이 넓고 길쭉한 나무까지 어우러지니 상당히 이국적인 풍경을 자아냈다. 여기도 계단이 넓어서 노약자나 어린이, 나 같은 임산부도 힘들지 않게 오를 수 있었다.

 

성벽을 따라 천천히 산책하며 걸어가니 조금 높은 언덕이 나오고 그 위에 올라서자 오키나와 시내가 한 눈에 보였다. 여기가 전망 좋은 명당 자리였구나. 밤에 와서 보면 야경도 정말 멋질 것 같다. 

 

이 곳은 해발 140m에 위치해 있는 아가리노 아자나라고 불리는 동쪽 망루인데 이 곳에 서면 나하 시내 너머 저멀리 푸른 바다와 수평선까지 한 눈에 보인다. 그리고 그 위에 맞닿아 있는 연한 푸른 빛의 하늘, 그리고 둥실둥실 떠 있는 뭉게구름까지 볼 수 있다. 이보다 더 완벽한 풍경이 있을까?

 

성 뒤쪽에서 본 슈리성 정전의 모습. 옛날 류큐 왕국의 왕들은 언덕에 자리한 이 궁에서 늘 나하 시내를 내려다보며 백성들의 고충을 듣고 그들이 편안하게 살 수 있도록 보살폈을 것이다.

 

성곽을 내려와 이번에는 서쪽에 있는 공원을 산책하며 걸어보았다. 슈리성 서쪽 구역은 일종의 공원으로 거대한 숲이 조성되어 있다. 숲으로 난 산책길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전망대가 나오는데 여기서도 이렇게 나하시의 모습을 한 눈에 볼 수 있었다. 여기에서는 아까 동쪽 망루에서 보았던 것보다 더 넓은 나하시의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이렇게 보니 나하시가 생각보다 큰 도시라는게 느껴졌다.

 

바로 앞에 보이는 붉은색 지붕에 구멍이 뚫린 건물은 슈리사관으로 관광객들의 정보 센터 겸 휴식 공간이다. 

 

여기저기 구경을 하다보니 벌써 2시가 넘었다. 다행히 아침을 든든히 먹어서 배가 많이 고프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엄마도 계시고 점심 시간도 훌쩍 지났으니 얼른 밥을 먹어야겠다. 오늘은 슈리성 안에서 밥을 먹기로 했다. 미리 가이드북에서 슈리사관이라는 곳에 슈이무이칸 레스토랑이 있다는 정보를 보고 왔기 때문에 오늘 점심은 그 곳에서 먹기로 했다. 슈리사관은 슈리성 안내를 비롯해 기념품 가게, 카페, 레스토랑, 화장실 등이 있는 관광객들을 위한 공간이다.

레스토랑에 가 보았더니 이미 많은 사람들이 밥을 먹고 있었다. 우리도 자리를 잡고 앉아서 메뉴판을 정독한 다음 음식을 주문했다. 우리가 주문한 음식은 마파두부 세트(950엔, 10,374원), 타코라이스(800엔, 8,736원), 오렌지 주스(350엔, 3,822원) 2잔이다.

위 사진의 음식이 타코라이스이다. 타코라이스는 1984년 오키나와 중부 코우초의 한 식당에서 개발된 음식으로 멕시코 요리인 타코의 주 재료를 쌀밥 위에 얹어서 비벼 먹는 일종의 퓨전 음식이다. 듣던 대로 향신료를 넣어 볶은 다진 고기와 양배추, 양파, 토마토, 치즈 등 토르띠야 안에 들어가는 속 재료가 쌀밥 위에 얹어져서 나왔다. 옆에는 매콤한 토마토 소스인 살사 소스도 따로 주어서 같이 넣어서 비벼 먹었는데 맛은 거부감 없이 무난한 맛이었다. 

 

이 음식은 마파두부이다. 마파두부는 원래 중국 음식인데 여기에도 전해졌나 보다. 세트라고 해서 뭐가 더 있나 기대했는데 두부와 해초를 넣은 맑은 국이 같이 나왔다. 마파두부는 우리나라 마파두부보다는 향신료 맛이 강해서 그렇게 입맛에 맞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화장품 맛이 났던 중국의 마파두부보다는 훨씬 나았다. 

 

그럭저럭 무난했던 점심 식사를 마치고 이번에는 성의 후문 쪽으로 나와 보았다. 찻길을 하나 건너면 나하시에 남아 있는 거의 유일한 류큐 왕국 시절의 옛길인 '긴조우초 돌다다미길'이 나오는데 가이드북에 소개되어 있어 호기심에 한 번 가보기로 했다. 돌로 만들어진 길이라 지금 보면 상당히 낭만적으로 보이지만 류큐 왕국 시절에는 국가의 기간도로로 '진주의 길'이라는 뜻의 '마타마도'라는 이름으로 불렸다고 한다. 예전에는 길이 4km, 총연장 10km를 자랑했지만 제2차 세계대전 중 오키나와 전투 때 대부분 파괴되고 현재는 아쉽게도 238m만 남았다고 한다. 그리고 류큐 왕국 시절에는 이 일대가 귀족들의 거주지여서 지금도 드물게 당시에 지어진 돌담이 남아 있었다.

집집마다 사람이 살고 있지만 돌아다니는 주민들도 없고 관광객도 없어서 그런지 간혹가다 나무에 앉은 새들의 노래 소리만 들릴 뿐 고즈넉하고 조용했다. 다만 길이 전체적으로 가팔라서 노약자나 어린 아이들은 조금 힘들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엄마는 무릎이 좋지 않아 계단에 앉아서 쉬시고 나만 길 끝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왔다. 임산부라서 그런지 나도 올라올 때는 무척 힘들었는데 엄마는 가시지 않길 잘하셨다. 그래도 슈리성과 마찬가지로 여기도 계단 하나의 길이가 길어서 다른 곳보다는 조금 덜 힘들었던 것 같다.

 

이름처럼 류큐 화강암으로 만든 돌길이 정말 편평하고 매끈매끈했다. 오죽했으면 '다다미길'이라는 애칭이 붙었을까. 게다가 이 곳은 '일본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도 이름을 올렸다고 하니 나하에서 가장 로맨틱한 산책로임에는 틀림 없는 것 같다.

 

다다미길을 다녀 온 후에는 다시 슈리성 안으로 들어와서 아까 가 보지 못했던 베자이텐 사원에 가 보았다. 물의 신인 베자이텐을 모신 사당으로 인공 연못인 엔칸지 안에 있다. 엔칸지는 슈리성의 빗물이 모이게 설계된 연못인데, 수심 3m 정도로 수량이 꽤 풍부한 편이라고 한다. 베자이텐 사원은 구름다리를 건너가야 볼 수 있는데 구름다리와 사원, 그리고 엔칸지가 함께 어우러진 모습이 무척 아름다웠다. 

베자이텐 사원까지 꼼꼼하게 둘러본 우리는 이제 이쯤에서 슈리성 관람을 마치고 바로 옆에 있는 옥릉으로 가보기로 했다. 오늘이 오키나와 여행의 마지막 날인데 아직 해가 많이 남아 있어 바로 숙소로 들어가기에는 뭔가 아쉬움이 남았기 때문이다.

 

옥릉은 역대 왕들의 능묘이다. 정확히는 1469년 쇼엔왕부터 1872년 퇴위한 쇼타이 왕까지 약 400년을 거친 류큐 왕국의 왕들이 묻힌 무덤군이다. 오키나와는 전통적으로 풍장을 하는데 왕이나 왕가의 가족들이 죽으면 시신 안치소에 5년 정도 보관만 한다. 5년 정도 시간이 지나면 시신이 모두 부패해 뼈만 남는데 그 후, 안치소 문을 열고 뼈를 깨끗하게 닦아 유골 항아리에 담아 보관한다. 그래서 중국이나 한국처럼 개별 무덤이 아닌 현대의 납골당 같은 왕릉이 생겨나게 되었다. 일반인들의 장례 문화도 똑같아서 지금도 집집마다 납골당을 하나씩 가지고 있는데 다만 지금은 5년 동안 시신을 안치하는 풍습은 없어지고 바로 화장을 해서 유골 항아리에 넣어 가족묘 안에 보관한다고 한다.

매표소에서 입장권(300엔, 3,276원)을 사니 먼저 지하의 박물관으로 가라고 안내를 해주었다. 노약자와 임산부, 장애인들을 위해서인지 엘리베이터가 있어서 엘리베이터를 이용해서 내려갔다. 박물관에는 옥릉에서 출토된 다양한 종류의 유골 항아리와 옥릉의 옛 모습을 담은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작은 크기의 어린 아이의 유골 항아리도 있었는데 내가 임신을 하고 있어서 그런지 조금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박물관이 그리 크지 않아서 금방 보고 다시 1층으로 올라와 길을 따라 걸으니 옥릉이 나왔다. 겉에서 보았을 때 왕릉은 크게 세 동으로 되어 있는데 가운데 건물이 시신 보관소, 왼쪽에 있는 동실이 왕과 왕비의 유골 단지가 모셔져 있는 곳, 서실은 왕과 왕비를 제외한 왕족들의 유골 단지가 모셔져 있는 곳이다. 규모로 보았을 때는 아무래도 왕과 왕비가 모셔져 있는 동실이 가장 컸다. 개인적이 생각이지만 이런 장례 문화라면 땅의 면적도 많이 차지하지 않고 제사를 지낼 때도 한 곳에서 지낼 수 있어서 효율적일 것 같았다. 

옥릉까지 관람을 하고 나니 이제 정말로 저녁이 다 되었다. 이제 다시 숙소 근처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다. 올 때는 슈리역에서 15분 정도 걸어서 왔는데 갈 때는 하루 종일 걸어다녔더니 발과 다리도 아프고 피곤하기도 해서 슈리역까지 버스를 타고 가기로 했다. 슈리성 입구에 있는 버스 정류장에서 한 30분 정도 기다리니 슈리역으로 가는 버스(7번, 8번)가 왔다. 현재 구글맵에서 확인해 보니 6시 16분에 도착하는 7번 버스가 있는데 그 때도 비슷한 시간에 버스를 탔던 것 같다. 슈리역까지는 6개의 정류장이 있고 시간은 5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는데 버스비는 230엔(2,511원)으로 조금 비싼 편이었다. 그래도 버스를 타고 가니 한결 편하게 갈 수 있었다.

슈리역에서는 숙소가 있는 겐초마에역으로 바로 가지 않고 중간에 사카에마치 시장이 있는 아사토역(260엔, 2,839원)에서 내렸다. 가이드북에 사카에마치 시장에 있는 만두 맛집이 소개가 되어 있어서 저녁으로 먹기 위해서이다. 

 

아사토역에서 동쪽 출구로 나가 사카에마에 시장으로 5분 정도 걸어가면 가이드북에 소개되어 있던 만둣집 '벤리야'가 나온다. 시장 안쪽에 있어서 찾기가 쉽지 않아 구글맵을 켜고 찾았다. 늦은 시간이라 그런지 시장에 문을 닫은 가게가 많아 전체적으로 어두컴컴하고 을씨년스러웠다. 다행히 만둣집은 아직 영업을 하고 있었는데 맛집이라 그런지 테이블에 앉아서 먹는 사람들도 있고 줄을 서서 포장해가는 사람들도 많았다. 양복입은 아저씨들은 삼삼오오 모여서 만두에 맥주 한 잔 곁들이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퇴근하면서 가볍게 한 잔 하기 좋은 맛집인 것 같았다. 테이블이 몇 개 없어서 먹고 가려는 사람들도 줄을 서서 기다려야 했다.

이 만둣집은 타이완 사람들이 직접 운영하는 샤오룽바오(소룡포) 전문점이라고 한다. 우리는 샤오룽바오와 군만두를 주문했는데 위의 사진은 군만두(10개 600엔, 6,552원)이다. 초간장에 찍어 먹으면 되는데 맛은 있었지만 만두가 작아서 좀 아쉬웠다. 나는 만두를 먹을 때 입 안 가득 넣고 씹으면 고기와 야채 맛이 어우러지면서 육즙이 터지는 그런 만두를 좋아하는데 기대가 너무 컸는지 이 만두는 그런 환상적인 맛은 아니었다. 그래도 금방 구워서 따뜻하고 겉은 바삭, 속은 촉촉해서 먹을 만 했다. 초간장을 찍으니 만두의 느끼한 맛도 잡아주고 나름 괜찮았다.

 

이 만두는 이 곳의 대표 만두인 샤오룽바오(소룡포, 6개, 650엔, 7,098원)이다. 샤오룽바오는 상하이식 전통 만두인데 만두 안에 뜨거운 물이 들어 있어 그냥 먹으면 입천장을 데일 수 있다. 그래서 먼저 만두를 숟가락에 올려놓고 젓가락으로 만두를 터트려 나온 물을 호호 불어 식혀서 마시고 그 다음에 만두를 먹어야 한다. 샤오룽바오도 맛은 좋았지만 크기가 작아서 큰 만두를 좋아하는 나는 역시나 좀 아쉬웠다. 하지만 앞에 놓인 생강채를 몇 가닥 올리고 초간장을 찍어 먹으니 이 만두도 나름 맛이 꽤 괜찮았다.

일본 방송에 몇 번 소개가 될 정도로 유명한 맛집이라고 해서 기대를 너무 많이 했는지 인생 만두까지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맛있다' 정도는 되었다.

 

두 가지 만두를 먹었지만 양이 적어서 배가 부르지 않았다. 그래서 가이드북에서 이 시장에 다른 맛집이 있는지 찾아 보았는데 다행히 가까운 곳에 고로케 맛집인 '우리즌'이라는 식당이 있어서 가 보기로 했다. '우리즌'은 일본말로 초여름을 뜻하며 1972년에 문을 연 오키나와 요리의 명가이자 대표적인 이자카야라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정말 입구에 다양한 술이 빼곡히 전시되어 있었다. 본관과 별관이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어서 어디로 가야할지 망설이다가 들어가니 직원이 별관으로 자리를 안내해 주었다. 가이드북에 의하면 본관은 완전히 술집 분위기이고 별관은 훨씬 차분한 느낌이라서 외국인이 오면 대부분 별관으로 안내해준다고 한다. 다행히 사진이 나온 메뉴판을 가져다 주어 주문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았는데 음식 종류가 정말 많았다. 우리는 이미 정한대로  '두루텐(도우루텐)'이라고 부르는 고로케를 주문했다. 두루텐은 타이모(토란과 비슷한 오키나와 특유의 고구마)에 돼지고기, 어묵, 표고 버섯을 섞어 반죽한 뒤 튀긴 음식이라고 한다. 오키나와를 대표하는 고로케로 이 식당에서 처음 개발한 음식이라고 하니 더욱 기대가 되었다.

자리에 앉으니 우선 오토시(자릿세 개념의 안주)를 가져다 주었다. 자릿세가 얼마였는지 지금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지출한 돈을 보니 1인당 200엔(2,184원) 정도 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조금 후에 두루텐(자릿세 포함해 1,080엔, 11,793원)이 나왔는데 1접시에 3개가 담겨 나왔다. 두루텐도 만두처럼 생각보다 크기가 작아서 좀 실망스러웠지만 그래도 맛을 기대하면서 한 입 베어 물었다. 그런데 웬걸! 내가 생각했던 고로케 맛이 전혀 아니었다!! 튀겼다기 보다는 찐 것에 가까울 정도로 튀김 옷도 무척 얇았고 맛도 정말 담백했다. 한국에서 먹었던, 두꺼운 튀김 옷에 약간 느끼하고 고소하면서 촉촉한 그런 고로케가 아니라 이건 완전히 다른 종류의 음식이었다. 가게가 생긴 뒤로 부동의 인기 넘버 원 메뉴라고 들었는데 일본 사람들은 이렇게 담백한 맛의 고로케를 좋아하나 보다. 어쨌든 한국식 고로케의 맛을 기대했던 우리는 먹는 내내 "이게 고로케라고?"를 연거푸 외치며 고로케 3개를 정말 맛없게 먹었다. 

 

이렇게 보니 감자전과 비슷한 모습이기도 하다. 맛도 감자전처럼 정말 건강해질 것 같은 맛이었다. 그나저나 왠지 속은 것 같은 이 허무한 기분은 누가 보상해주나?

또 한 가지 아쉬운 건 오키나와 전통 요리를 파는 식당이니만큼 다른 음식도 시켜서 먹어보았으면 좋았을 텐데 그 때는 그 생각을 못했나 보다. 지금 찾아보니 다른 식당에서는 흔히 팔지 않는 특이한 음식도 많던데 먹어보지 못한 것이 조금 후회가 된다. 다음에 다시 가게 된다면(그럴 일은 별로 없겠지만) 다른 오키나와 전통 음식들도 다양하게 먹어보고 싶다.

맛집이라고 소문난 식당을 두 군데나 가서 저녁을 먹었는데 아직도 허전한 이 느낌은 뭐지? 아무튼 오늘 저녁은 인정하기는 싫지만 그다지 만족스럽지는 않았다.

저녁을 먹고 다시 아사토역에서 모노레일을 타고 숙소가 있는 겐초마에역(230엔, 2,511원)으로 왔다. 오키나와에서의 마지막 밤이니만큼 숙소에 일찍 들어가기가 무척 아쉬웠지만 밤까지 즐기기에는 우리는 너무 지치고 피곤했다. 한 명은 어르신, 한 명은 임산부 아니었던가.

숙소에 들어가 깨끗하게 씻고 침대에 누우니 이제야 좀 살 것 같았다. 근데 잠깐 TV를 보니 뉴스에서 오키나와 해상으로 태풍이 올라온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오키나와 해상으로 태풍이 자주 지나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하필 지금 지나갈 건 뭐람. 과연 내일 우리는 무사히 한국으로 떠날 수 있을까? 조금 걱정이 되는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