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즐거운 편지(2004~현재)

느리게, 그리고 잔잔하게(1)-순천 순천만 갈대밭

anna325 2007. 1. 18. 07:50

 

* 순천만 갈대밭, 조금 더 걸어가면 더 많은 갈대들을 만날 수 있다.

 

2005년 8월 5일 금요일 날씨 : 햇빛 쨍쨍

 

-순천만 갈대밭-

 

 아침 9시 55분에 순천으로 출발하는 무궁화호 열차를 탔다. 이렇게 낮에 기차를 타는 것은 실로 오랜만이다. 숙박비를 줄이기 위해 여행을 떠날 때는 언제나 밤기차를 타곤 했다. 하지만 오늘은 순천에 도착해 오후에는 순천만을 가볼 생각이므로 느긋하게 아침까지 먹고 8시 50분쯤 집을 나섰다.

 

 9시 55분 출발, 13시 50분 도착. 장장 4시간의 여정이었다. 무료한 시간이 흐르고 잠깐 졸기도 하는 사이 기차는 쉬지 않고 달려 드디어 순천 역에 도착했다. 기차표를 기념으로 챙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

 

 우선 김밥 두 줄로 늦은 점심을 대신하고 세시쯤 순천만으로 가는 버스(67번)를 탔다. 순천 시가지를 벗어나서 푸른 벼들이 가지런히 심어져 있는 시골길을 달렸다. 한 15분쯤 달렸을까. 친절한 기사 아저씨는

 “ 다대포구 내리세요.”

  하고 크게 외쳐주셨고 나는

 “ 고맙습니다.” 하고 인사하며 버스에서 뛰어내렸다.

 

 다대포구는 다시 500m쯤 걸어 들어가야 했는데 기대에는 훨씬 못 미쳤다. 포구라는 것이 배 다섯 척이나 될까 한 곳이었고 내가 사진으로 보았던 해가 지는 S자형 물줄기와 갯벌은 어디에도 없던 것이었다. 아마도 바다가 시작되는 곳은 한참을 더 가야하나 보았다. 실망을 하며 하릴없이 갈대밭을 따라 한참을 더 걸었다. 속으론 ‘이것이 다가 아닐거야. 분명 더 멋진 곳이 나올거야.’ 라고 생각하며, 또 제발 그런 곳이 나와 주길 기대하며 걸었지만 우리나라 최대 규모라는 갈대밭만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갈대의 계절은 가을이 아니었던가. 가을이 되면 갈대꽃이 만발해 장관이라는 안내판이 더 밉게 보였다.

 

 실망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아무리 준비를 잘한 여행이라도 여행 내내 만족스러울 수는 없는 법이다. 그래서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마음을 고쳐먹고 다시 버스를 타러 나왔다. 나오는 길에 생태체험 학습관이 깔끔하게 조성되어 있는 곳이 있어 아담한 정자에서 잠깐 쉬었다. 정자 사이로 보이는 풍경이 그림처럼 예뻐보이길래 사진도 찍고, 큰 맘 먹고 준비해온 미숫가루도 타 먹었다. 그리고 색연필로 방금 전에 본 갈대밭을 일기장 한 쪽에 그려넣기 시작했다. 여행할 때 색연필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은 얼마 안 되었는데 TV에서 색연필로 그린 그림을 보고 ‘색연필로도 이렇게 아름다운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물론 내 그림 수준은 우리 반 애들보다도 못하지만 그래도 그리다 보면 나아지겠지. 그러는 동안 해가 한뼘이나 기울었다. 어두워지기 전에 순천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그렇게 만족스럽진 않았지만 그럭저럭 괜찮았다. 무엇보다 사람들이 복작거리지 않고 그래서 한가하고 여유로워서 그 점은 맘에 들었다. 비포장도로로 간간히 지나가는 차 이외에는 누구하나 바삐 움직이지 않았다. 해가지는 S자 순천만을 못 보았으면 어떠랴. 내가 여행하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익숙한 일상을 벗어나 보는 것이 아니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