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홀로 국토 종단 도보 여행기(3) 해남 북평면 남창리-강진군
다산 초당
<2일째>
2003년 6월 21일 토요일 날씨 : 바람 선선
해남군 북평면 남창리 -> 강진군 다산 초당-> 강진군, 약 36km, 6시 30분-19시 15분
어제는 7시부터 자서 오늘 5시 45분에 일어났다. 와우! 대기록이다.
아침에 일어나서 제일 먼저 든 생각은? 내가 집 놔두고 왜 여기서 자고 있을까. 그래도 할 수 없지. 이미 시작해 버린 것을.
6시 30분에 출발했다. 아주머니께서 내가 왔다 갔다 하는 것을 들었는지 깨셨다. 메모 써 놓고 조용히 나오려고 했는데.
또 무작정 걸었다. 중간에 한 아저씨가 길가에 차를 세우며
"탈라요?"
그러신다. 타진 않았어도 무지 감사하다. 반대편 차선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떠난 지 1시간 30분쯤 되어서 쉴 곳 발견! 바람이 시원한게 추울려고 한다. 이제 가야지. 오늘 아침은 또 쵸코바다.
열심히 열심히 걸었다. 도로변에 주유소가 참 많다. 저기 또 주유소가 보인다. 한 눈 팔며 걷고 있는데 트럭이 한 대 소리도 없이 선다. 그러더니 아저씨가 또 아무 말씀도 안하시고 얼음물을 건네주신다. 차 주유하고 받은 물인 것 같은데 무지 감동한 나는 90도로 꾸벅 인사했다.
오늘 참 좋은 날이다. 역시 세상은 살만 하다니까. 이런 좋은 분들이 많으니.
점심 때가 가까워 오니 배가 고프다. 신전면 소재지에 식당이 있길래 둘러보니 밥을 파는 곳을 못 찾겠다. 그래서 돌아다니다가 어느 식당에 들어갔더니 뼈다귀 해장국을 판다. 4000원이길래 시켰는데 다 먹고 나니까 공기밥까지 5000원이란다. 미리 말을 하던지. 이런 경우는 또 첨이다. 하지만 어쩌랴 이미 먹어 버린 걸.
또 걷기 시작했다. 이번엔 국도로 가지 않고 다산 초당 가는 길로 들어선다. 근데 이건 거의 등산 수준이다. 먼저 유물 전시관에 들른 다음 800m 떨어진 가파른 길을 올랐다. 장난이 아니다. 배낭까지 맸는데. 정약용 할아버지는 왜 이리 높은 곳에 사셨을까. 귀양지니 어쩔 수 없었겠지만 말이다. 사람이 꽤 많았다. 정말 숲이 우거진 첩첩 산중이다. 낮이라도 혼자 오면 무서울 것 같다. 정말 이런 곳에서 어떻게 사셨을까.
나름대로 의미있는 시간을 보내고 다시 강진을 향해 출발.
지금은 막 강진읍 경계선에 들어섰다. 아직도 8km나 남았다. 갯벌이 펼쳐진 쉼터에서 쉬고 있는 중인데 여행할 맛 난다.
그려. 바로 이것이여. 내가 바란 것.(전라도 다니다 보니 나도 전라도 사람 다 됐다!) 근데 등이 정말 아프다. 등뿐이랴. 허리, 어깨, 발에는 물집도 잡히고. 더 웃긴 건 강진 시내 들어가는 길이 정말 화가 난다는 것. 저기 아파트도 보이고 건물이 많이 있는 건 보이는데 길이 구불 구불. 직선으로 가면 한 시간이면 갈 거리인데 무려 두 시간이 걸렸다. 정말 힘들다. 발이 너무 아프다. 누구는 '아! 배고프고 배고프고 배고프다'하면서 갔다는데 나는 '아! 힘들고 힘들고 힘들다'하면서 간다.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강진읍 입성. 근데 한 중국집에 들어가서 밥 먹으며 근처에 찜질방이 있는지 물어보니 시골이라 24시간하는 찜질방이 없다는 것이다. 뭐라구요? 순간 입맛이 싹 달아나 버렸다. 그래도 명색이 읍인데 설마 찜질방 하나 정도는 있겠지 하고 철썩같이 믿고 왔는데 없다고? 그럼 오늘은 어디서 자나? 입맛이 없어져서 돈주고 사먹는 밥을 반이나 남기는 이변을 연출하며 나는 다시 한번 물었다. "그럼 성당은 있나요?" 라고. 다행히 멀지 않은 곳에 성당이 있었다. 근데 성당 찾아가는 길에 갑자기 눈물이 핑 도는 것이다. 이 넓은 땅에 나하나 잘 곳이 없구나 싶은 게 서러운 생각이 든 것이다. 힘들게 내가 왜 이 고생을 하고 있나? 에휴. 역시 몸이 힘드니 생각도 자연스럽게 따라간다.
드디어 성당 도착.
수녀님께 아주 불쌍한 목소리로 하룻밤 재워달라고 간청했더니 잠깐 기다리라고 하신다. 한참 후에야 (난 수녀님이 거짓말 하신 줄 알았다. 이런 사상이 불온한 신자 같으니.) 다시 나오신 수녀님께서 근처에 혼자 사시는 할머니께 데려다 주신단다. 오! 역시 멋진 수녀님. 운전도 어찌나 잘하시는지. 내가 도착한 곳은 요즘 세상에 이런 집도 있나 싶은 시골집이었다. 그래도 내 한 몸 뉘일 곳이 있다는 게 참 감사했다. 할머니는 참 좋은 분이셨다. 이 곳에서 여행자들이 많이 자고 간다고 하신다. 에구, 감사해라. 우유도 주셔서 마시고, 샤워도 하고, 빨래도 하고, 그리고 잤다. 세상에는 정말 좋으신 분들이 더 많은 것 같다.
참! 오늘 걸은 거리는 36km 정도 된다. 쉬는 시간 포함해 13시간. 내가 생각해도 강행군이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내가 좋아서 시작한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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