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홀로 국토 종단 도보 여행기(10) 구례군-남원시
공원에서 본 분수
<9일째>
2003년 6월 28일 토요일 날씨 : 맑음
구례군 -> 남원시, 약 29km, 9시-17시
집에 돌아가고 싶다. 발도 여전히 물집 잡히고 어깨, 허리도 말이 아니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다니 정말 대단해!
여행하는 동안 뭘 배우고 또 느꼈는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오늘이 9일째이다. 여행 오기 전에는 과연 하루나 할 수 있을까 하고 걱정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괜한 걱정이었다. 걸어서 여행하는 것도 나쁘진 않다. 물론 좀 힘든 건 사실이지만. 오늘은 잘 갈 수 있을지 걱정이다. 언제까지 할지도 아직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언제나 하는데까지는 열심히. 오늘은 또 나에게 무슨 일이 펼쳐질까? 좋은 일이 있었음 좋겠다. 정말로.
오늘 가는 길은 왕복 4차선 19번 국도이다. 4차선 정말 싫다. 내가 평생 보아도 남을 화물트럭을 하루에 다 보아야 하니까. 무섭기도 하고. 아침에 핸드폰 충전하려고 편의점 갔는데 글쎄 30분 기다렸는데 안됐다. 에잇, 할 수 없지. 미안해하는 직원을 뒤로 한 채 남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남원까지는 꼭 하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정말 하게 되는군.
근데 오늘은 참 일들이 많은 아니, 복잡한 날이었다.
열심히 가고 있다가 13km 남았다는 표지판 부근에서 주유소가 있길래 잠시 화장실가려고 들렀다. 나오다가
"여행하세요?"
라는 말소리가 들려 오길래 돌아봤더니 주유소 주인인 듯한 젊은 아저씨였다.
"어디서부터 오셨어요?"
"예. 땅끝이요."
"와! 화이팅!!"
보기에는 엄청 무표정한데 화이팅하며 제스처를 하는 모습이 어찌나 귀여운지(?) 웃을 뻔 했다. 그러면서 남원으로 가는 샛길을 알려주신다. 커피까지 뽑아 주시면서. 수고하라시면서. 셋째날 이후로 고마움을 별로 느껴보지 못해서인지 이렇게 조그만 친절이라도 받게 되면 절이라도 하고 싶다. 그래서 알려주신대로 샛길로 갔더니 700m쯤 되는 터널이 나온다. 이름하야 '밤재 터널'. 9일 동안 처음이다. 터널지나기는. 근데 소리가 장난 아니다. 무서워라. 망설이다 망설이다 결국 귀막고 갔다. 700m라는데 7km는 되는 것 같다. 무사히 빠져나와 보니 허걱! 이번에는 이정표도 없는 두 갈래길이 나온다. 그래서 앉아서 기다렸다가 지나가는 차가 서길래 여쭈어 보았다. 그래서 무사히 길 찾았다. 차도 별로 안다니고 참 한적한 국도길이다.
드디어 남원 입성.
광한루원이 먼저 나를 반긴다. 승월교라는 다리가 참 예쁘다. 입장료 1300원. 근데 들어가서 실수를 했다. 필름을 끼웠는데 어리버리해서 중간에 열어본 것이다. 바보. 내가 왜 그랬을까잉. 지나가는 사람한테 물어보니 다시 새것을 끼워야 한다는 것이다. 어제 여관비 내느라고 돈이 하나도 안 남아서 필름 못사는데. 어쩔 수 없이 돈 빼려고 다시 나왔다.
근데 현금지급기 365코너가 어디있는지 정말 못찾겠다. 그래서 다시 농협이라 써 있는 큰 건물이 있는 곳으로 갔더니 여기는 농산물 도매를 하는 곳인가 보다. 둘러 봐도 현금지급기는 어디에도 없다. 한 아주머니와 아저씨가 수박을 내리고 있길래 가서 365코너 없냐고 여쭈었더니 아주머니가 매우 귀찮다는 표정으로 문 닫았다고 하신다. 그래서 포기하고 파출소를 찾았다. 엄청 멀다. 오늘도 남원 시내 다 돈다. 경찰 아저씨가 약도까지 그려 주시면 365코너와 찜질방을 소개해 주신다. 다행히 돈을 찾고 사진관 가서 필름을 사려고 했더니 통 속에 있는 것은 괜찮으니까 그냥 쓰라고 하신다.
뭐라구욧? 내가 왜 이 고생을 했는데. 구경도 제대로 못하고. 아.. 오늘 왜 그러지. 역시 무식하면 몸이 고생이다. 그래서 다시 터벅터벅. 시장 안으로 들어가 밥먹고 음악분수대로 갔다. 광한루는 내일 다시 가기로 했다. 한 시간마다 정시에 20분씩 분수 쇼를 한다고 해서 갔는데 나 가고 1분만에 꺼진다. 다시 40분을 기다려야 한다. 그래서 그 위에 춘향 멀티플라자에 가서 레이져 쇼와 워터 쇼를 먼저 봤다.
다리가 정말 아프다. 분수까지 보니까 시간이 밤 10시 30분. 정말 녹초가 되어서 찜질방 왔다. 찜질방은 또 왜 이리 멀까. 힘들어서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다. 남은 곳들은 내일을 기약하며 씻고 바로 잤다. 시끄러워서 선잠 잤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