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홀로 국토 종단 도보 여행기(18) 문경시-문경시 동로면
<17일째>
2003년 7월 6일 일요일 날씨 : 흐림, 이슬비
문경시 -> 문경시 동로면, 약 32km, 8시-4시 30분
아침에 7시 정도에 일어난 것 같다. 어젯 밤에는 근처에 절이 있는지 절에 가려는 아주머니들이 많이 오셔서 역시나 시끄러웠다. 그래서 10시에 누웠지만 12시 넘어서까지 눈만 감고 있었다. 좀 있으면 잠잠해지겠지 하면서 누워 있었는데 옆에 누운 아주머니께서도 좀 시끄러우셨는지 "잠 좀 잡시다." 하시는 것이었다. 그 말 한마디에 조용해 졌다. 그래서 6시 넘어서 까지 잘 잤다. 일어 나서 씻고 돌아오니 전화벨이 울린다. 받아보니 엄마다. 엄마도 내가 걱정되기는 하시는 모양이다. 가서 고생 좀 하고 오랄 땐 언제고. 어쨌든 그렇게 준비를 하고 출발.
어제 경찰 아저씨가 알려 주신 길로 가고 있다가 확인하는 뜻에서 가게에 아저씨들이 모여 계시길래 단양가는 길을 여쭈었다. 그랬더니 지름길이 있다며 친절하게 약도를 그려 주신다. 아저씨께서 알려주신 길은 정말 한적했다. 깊은 산골인데 마을도 있고 물이 흐르고 사람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비가 왔다 안 왔다를 반복해서 우산을 폈다 접었다 한다. 오르막이 있는가 하면 내리막도 있고 그랬다. 그렇게 해서 점심 때가 다 되어서야 59번 국도로 진입하게 되었다. 아침부터 먹은거라곤 쵸코바 하나와 과자 몇 조각이 전부다. 하지만 식당마다 비싼 회나 매운탕 같은 것을 팔아서 먹지 못했다. 경치는 매우 좋았는데 중간에 경천댐으로 인해 생긴 경천호에서는 사람들이 모터 보트를 타며 잼있게 놀고 있었다. 참 한가로운 사람들.
동로면의 면 소재지인 적성에 도착한 시간은 4시 30분 정도였다. 여기에서부터 높은 고개가 시작되는데 그걸 넘으면 해가 질 것 같다. 그래서 여기서 차타고 단양에 갈 생각이었다. 우선 파출소 가서 물어보니 나이 많은 아저씨가 계셨는데 참 불친절했다. 지금까지 겪어본 바에 의하면 나이가 젊은 경찰 아저씨일수록 더 친절하셨다. 어쨌든 단양에 한번에 가는 버스는 없고 재 넘어서 갈아타야 한단다. 그래서 남는 시간에 중국집에 가서 밥을 먹었다. 그리고 나서 밑져야 본전이라는 심정으로 아까 보아 두었던 교회에 가서 하룻밤 잘 수 없냐고 여쭈어 보았다. 젊은 목사님이 여기는 잘 데가 없는데 하시면서 난처해 하신다. 그럴 줄 알았다. 그래서
"어려우시면 그냥 갈게요."
했더니만
"어딜 가요? 일단 들어와요."
하신다. 사모님과 얘기하시는 것을 들어보니 단양 버스 다니는 곳까지 데려다 주실 모양이다. 사모님께서는 좀 쉬었다 가라시면서 이것 저것 간식거리를 내 오신다. 수박에 음료수까지 잘 먹고 데려다 주셨다. 단성까지. 목사님은 연신 여자 혼자 대단하다며 비행기를 태우신다. 물론 내가 천주교 믿는다니까 잠시 못마땅해 하셨지만 말이다. 난 종교는 모두 본질적으로 같다고 생각하는데 왜 사람들은 자기가 믿는 종교만 좋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자기 종교가 소중하면 다른 사람이 믿는 종교도 소중하다는 걸 왜 모를까. 음~ 그것 하나만 빼면 처음으로 잘해주신 목사님이 되었다. 아들(오찬민 6)과 딸(오시연 4)도 있었는데 어찌나 귀여운지.
그렇게 해서 무사히 단성(지명은 나중에야 알았음)까지 와서 물어봤더니 3km정도 가면 '물가마 건강센터'가 있다는 것이었다. 인터넷 자료에서 보 그 곳이다. 그래서 버스 안 타고 걸어서 갔더니 허걱~
"주일은 쉽니다"
이런~ 눈 앞이 깜깜해진다. 어쩌지, 어쩌지, 하는데 자세히 보니 안에 사람이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문을 마구 흔들었더니 안에 계시던 할아버지께서 나오신다.
"돈은 낼테니 하룻밤만 자게 해 주세요. 여행하는 학생이라 잘 곳이 없거든요."
흥분하니까 나도 모르게 말이 빨라진다. 그랬더니 여기 주인이신 할머니께서 허락하셨는지 들어오란다. 할머니께서는
"여자니까 내 문 열어 줬지. 남학생이었으면 어림도 없어."
그러신다. 내가 여자로 태어난 것이 이렇게 감사했던 적도 없었을 것이다. 근데 비싸다. 7000원. 먼저 돈 얘기를 하시는 것을 보고 깍아 달라고 말도 못꺼냈다. 물가마는 쉬는 날이라 가지도 못하는데 말이다. 그래도 하룻밤 자는게 어디야. 참 감사했다. 돈은 좀 아까웠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