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무작정 떠나기-버스여행(2004)

겨울 여행(5)-거제 외도, 해금강

anna325 2007. 1. 19. 07:56

 

거제 해금강의 십자 동굴..

2004년 2월 1일 일요일 날씨: 맑음

-해금강, 외도-
내내 날씨가 좋아서 나도 기분이 좋다. 아침에 진주에서 장승포에 가려고 했더니 한 시간 반이나 기다려야 한다고 해서 통영으로 우선 가기로 했다. 통영에 도착해서 막 떠나려던 버스를 잡아타고 거제시의 장승포로 왔다.
장승포 터미널은 전형적인 시골 버스 정류장 같았다. 이런 곳에 터미널이 다 있구나 하는 생각을 잠깐 하다가 서두를 일이 없다는 듯 아주 천천히 내렸다.
고현에서 여기까지는 나 혼자서 타고 왔다. 이런 곳으로 버스를 타고 오는 사람들은 나 밖에는 없나 부지...하는 말들을 주워 섬기며 선착장을 찾기 시작했다.

내가 여기까지 온 이유는? 단 하나..그 아름답다는 외도를 보기 위해서이다. 이국적이다 못해 환상적이라는 그 곳..을 찾아 여기까지 온 것이다. 선착장은 터미널에서 가까웠는데 물어 물어 도착한 선착장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와 있었다. 겨울이라 사람이 별로 없을 줄 알았는데 겨울에 이 정도면 다른 때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다는 얘기야.. 참.. 다행히 유람선은 20분 후에 떠난다고 한다. 코스는 해금강과 외도가 전부였는데 13000원이나 했다. (지금 생각해도 너무 비싼 걸..-_-;;) 결론부터 말하자면 전혀 기대를 하지 않았던 해금강이 오히려 더 좋았다. 유람선을 타보는 것은 내 생애 첨이다. 날씨가 좋아 파도가 크게 치진 않았는데, 그래서 그런지 적당히 이리 저리 흔들리는 느낌이 참 좋았다. 유람선은 주로 나이 지긋하신 분들이 많이 타셨는데 "어이~ 아가씨 조금만 앉아봐요. 아니.. 저쪽으로 좀 비켜볼래요.. 아니.. 이쪽으로.." 하시는 분들 때문에 나는 사진도 제대로 못 찍었다. 일회용 카메라로 열심히 셔터 돌리시면서 어찌나 열심히 사진을 찍으시던지.. 그 표정들이 자못 비장하기까지 했더랬다.

그러나 정작 내가 그토록 가보고 싶었던 외도는 실망.. 실망.. 실망.. 이었다. 겨울이라 그런가 내가 본 것은 앙상한 가지만 남은 나무들과, 색이 누렇게 변한 정원의 화초가 전부였다. 역쉬 자연을 보려거든 겨울은 피해서 가야할 지어다. 흐흑...
오늘은 그리 만족스럽지 않은 여행을 했지만, 여행이 농축된 인생이라면 햇살 좋은 날도 있고, 굳은 날도 있는 거 아니겠나... 나의 인생이 그런 것처럼...

장승포로 와서는 바로 부산행 버스를 탔다. 부산은 여기서 꽤 먼 것 같은데 부산행 버스가 제법 많았다. 부산까지는 무려 3시간 30분이나 걸렸다. 그동안 나는?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이 얼굴 하얘서 이젠 거의 다 왔겠지..(마산 지나고 있음) 이젠 거의 다 오지 않았나?(창원 지나고 있음) 하는 생각으로 1분, 1분을 버티고 있었다. 아.. 그 절대 배고픔의 시간들... 생각해 보니 아침부터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난 여행할 때는 자주 멀 먹어야 한다는 것을 잊어버린다. 그것보다 급한 일(예를 들면 길 묻기라든가 뭐 그런..)들이 더 많다고 나름대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하루가 다 갈 때쯤에는 미칠듯한 허기가 밀려오곤 한다. (이게 무슨 생고생이냐고..나 참..)
꿋꿋하게 참는 나의 정신력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며(그 정신력으로 다른 걸 했으면..) 3시간 30분을 버틴 후에야 간신히 부산 서부 터미널에 도착했다.

그 정신에도 경주행 버스를 알아보겠다고 매표소에 갔더니 여기서는 경주행 버스가 없고 동부에 있는 종합 터미널로 가야 한단다. 가라면 가야지.. 별 수 있나 하며 무심하게 터미널을 빠져 나와 김밥 도시(?)에서 김치 찌개를 먹었다. 내 평생 김치 찌개를 그렇게 맛있게 먹어 보긴 처음이었다. 입에서 살살 녹는 그 맛.. 잊지 못한다.
나오다가 근처에 찜질방 있냐고 물어 봤더니 다행히 근처에 있단다. 음.. 일이 너무 쉽게 풀리는걸.. 하는 생각을 채 하기도 전에 찾아간 찜질방은 일요일이라 휴무란다.
(자.. 기대하시라.. 나의 휴무 퍼레이드를...내일도 계속)

다시 헤매기 시작했다. 터미널에서 1Km는 족히 떨어졌을 파출소에 가서 다른 찜질방을 알아냈지만 알고 있는 사람이 없었다. 몸은 으슬으슬 춥고 눈은 감기는데 사람들은 무심히들 지나 갔다. 한 참을 헤맨 끝에 가까스로 찾아냈다.
오늘은 참 좋게 생각하려 해도 운이 별로 없는 날이었다. 하지만 어쩌랴.. 어디까지나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인걸.. 혼자 이런 말들을 주워 섬기며 약간 우울해졌다.
하지만 단순한 나 답게 금방, 그래도 여기까지 잘 왔지 않았나.. 하며 결국은 그냥 좋게 좋게 생각키로 했다.(간단해서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