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끝. 탑에서 내 친구들과 함께
<1일째>
2003년 6월 20일 금요일 날씨 : 맑음
해남군 송지면 땅끝 -> 해남군 북평면 남창리, 약 23km, 10시 30분-17시
어제 무려 4시간이나 기다려서 새벽 2시 5분 광주행 기차를 탔다. 평소 '밤기차의 낭만'을 꿈꿔온 나였지만 밖은 깜깜한 어둠뿐이고, 눈꺼풀은 무겁고, 낭만이고 뭐고 일단 자는 게 우선. 약 2시간 30분 동안 선잠을 자고 나니 종착역에 도착했다는 안내 방송이 흘러나온다. 비몽사몽 간에 내려서 보니 광주역!
드디어 전라도 땅을 밟다!
시간은 새벽 4시 17분. 표 받는 아저씨께 다가가 터미널 어떻게 가냐고 물었다. 17번 버스를 타면 된단다.
어쨌든 시간이 시간인 만큼 6시가 될 때까지 대합실에서 노숙자들처럼 의자에 누워 한 시간쯤 있었다. 지금 아니면 내가 이런 걸 언제 해보겠어. 그런 말들을 궁시렁거리며 누워 있다가 6시쯤 나와서 17번 버스를 타니까 터미널처럼 생긴 큰 건물이 보이길래 내렸다. 근데 차도가 6차선인지 아무튼 엄청 복잡하고 건널목도 없다. 촌에서만 살아서 그런지 이런 도심으로 오면 꼭 해매게 된다. (난 언제쯤 지하 상가에서 길을 잃지 않을 수 있을까?) 두리번거리던 나는 옆에 착하게 생긴 청년이 있어서 어떻게 건너느냐고 물었더니 저기 지하도로 가란다. 그래서 튼튼한 두 다리로 열심히 갔더니 땅끝행 버스비가 무려 만원이나 했다. 돈도 없는데 너무 비싸다.
아침 6시 30분 차. 차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버스 기사 아저씨가
"워디까지 가요?"
그러시길래
"땅끝이요."
했더니
"그려. 이거 타야여."
그러신다. (지두 아는디요?)
그렇게 두 시간 반을 달려 9시에 땅끝에 도착했다. 인터넷에서 사람들이 실망했다는 말을 너무 많이 들어서 별 기대 안하고 갔더니 오히려 나에게는 좋았던 것 같다.
드디어 출발이다!
남창까지 약 23km 되는 것 같다. 근데 배낭도 무겁고 발도 아프고 처음부터 장난이 아니다. 중간에 정말 몇 번을 쉬었는지 모를 정도. 지금은 남창까지 약 4km 남은 곳에서 쉬고 있다. 여기는 가만 보아하니 사람이 살지 않는 집인 것 같아 어째 좀 으스스하다.
내가 이걸 왜 시작했을까 하는 생각부터 통일전망대까지는 무리일 것 같다는 생각까지 별별 생각이 다 든다. 그래서 그냥 맘 편히 먹고 있다. 이 여행의 취지는 자신감을 얻는 것, 그리고 과거를 잊고(참 거창하네.) 새로운 마음을 갖는 것, 나의 한계를 시험해 보는 것 등이 아니었던가. 어디까지 가는 것 말고. 자! 다시 일어나 또 열심히 걸어보자. 근데 오늘은 어디서 자야 하나. 아참! 나 이제까지 아침에 쵸코바 하나 먹고 여기까지 왔다. 남창 도착하면 식당부터 가야겠다.
드디어 남창 도착!! 우선 남창 사거리 기사식당에서 밥을 먹었다. 아침부터 쵸코바밖에 먹은 것이 없는데도 입맛이 별로 없다. 힘들어서 그런가 보다. 발바닥에 벌써 물집이 3개나 잡혀 있었다.
오늘은 너무 힘들고 피곤하다. 벌써부터 이러면 어쩌나. 에구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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