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서 설명은 'ENJOY 이탈리아-윤경민'을 참고하여 썼다.)
오늘이 벌써 이탈리아 여행의 마지막 날이다.
시간이 정말 빨리 지나간다. 엊그제 온 것 같은데 벌써 마지막 날이라니...
오늘은 바티칸 대성당에서 미사를 드릴 생각이다. 미사 시간에 맞춰 가면 일반 신자들도 미사를 볼 수 있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오늘은 페스츄리 비슷한 빵을 골랐다. 부모님은 카푸치노, 나는 우유를 시켰다. 숙소에서 아침을 먹고 나와서 배가 든든했기 때문에 저 빵은 따로 챙겼다. 배고프면 먹어야지 하면서. 여전히 우유는 부드럽고 따뜻했다.
건포도가 올라가 있는 빵
마지막 날이니 테르미니 역 사진도 한 장 남겨야지. 이른 아침인데도 도착한 사람, 떠나는 사람으로 복작복작했다.
아직 미사 시간이 한참 남아서 지난 번에 저녁에 보았던 트레비 분수를 아침에 다시 보기 위해 트레비 분수 쪽으로 걸었다. 테르미니 역 앞의 큰 길은 아스팔트가 깔려있는데 골목길이나 차의 통행량이 많지 않은 길은 이렇게 돌을 보도블럭처럼 깔아 놓았다. 무슨 이유가 있는지 궁금했다. 아님 원래 깔려 있던 것을 그대로 보존한 건가?
로마는 전신주가 하나도 없다. 전선을 땅 속에 묻어 연결을 했나 보다. 건물도 반듯반듯하고 전신주나 전선도 없어서 거리가 무척 깔끔하고 정돈된 느낌이 들었다.
돌을 깐 도로
트레비 분수는 테르미니 역에서 걸어갈만 하다. 지하철 두 정거장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거리 구경하면서 걸어가니 힘도 안 들고 엊그제보다 금방 도착한 것 같다. 에메랄드 빛으로 빛나는 물이 참 예쁘다. 엊그제도 아침에 갔었는데 분수의 물을 다 빼고 바닥 청소를 하고 있었다. 그래서 아침에 구경을 못하고 저녁에 왔었다. 바닥 청소할 때 보니 사람들이 던진 동전이 가득 쌓여 있었는데 불우이웃돕기에 쓰인다고 한다.
트레비 분수는 고대의 황제 아우구스투스가 명한 '처녀의 샘'으로 전쟁에서 돌아 온 병사들에게 물을 준 한 처녀의 전설을 분수로 만든 것이다. 분수의 오른쪽 위에 이런 이야기를 담은 조각품이 있다고 한다. 평범했던 이 분수는 1732년 교황 클레멘스 13세가 니콜라 실비에게 명해 지금의 모습으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이 분수는 바로크 양식의 마지막 최고 걸작품이라 칭한다고.
분수의 중앙에 있는 신은 바다의 신 '포세이돈'이고 양쪽으로 말을 잡고 있는 신은 포세이돈의 아들 '트리톤'이다. 왼쪽의 날뛰는 말은 풍랑을, 오른쪽의 말은 고요한 물을 상징한다고 한다.
요리 보고 저리 보아도 참 아름다운 분수이다. 로마에는 분수가 정말 많은데 조각의 모습이 모두 다른 것에 진심으로 감탄했다. 로마 사람들의 미적 감각의 끝은 대체 어디일까?
또다시 지하철 A선을 타고 오타비아노 역에서 내려 바티칸 대성당으로 가는 길이다. 가는 길에 스위스 근위병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과거 침략 시절, 스위스 용병들이 끝까지 남아 목숨을 걸고 교황을 지켰다고 한다. 그 후 지금까지 약 100여 명의 스위스 용병들은 칼과 창만 무장한 채 바티칸을 지키고 있다. 이 화려한 옷은 미켈란젤로가 디자인한 것이라 한다.
10시 30분 미사를 보았는데 이미 많은 사람들이 와 있었다. 미사 시간에 거의 딱 맞게 들어와서 헐레벌떡 뛰어 왔다. 미사는 이탈리아어로 진행이 되어서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여기서 미사를 드릴 수 있음에 정말로 감사드렸다. 헌금도 하고 성체도 모시고 우리 가족에게는 특별한 시간이었다.
미사가 끝나고 신부님, 주교님들이 퇴장하신다.
주 설교단. 베르니니가 만든 청동을 입힌 나무 의자가 있다. 875년 카롤 2세가 신성로마제국 황제 대관식을 기념하여 교황 조반니 7세에게 증정한 것이라 한다.
화려한 천개의 천정 모습
천개 아래에 있는 성 베드로의 무덤
성 베드로 상. 직원들이 지키고 있어 발을 만질 수 없었다. 발을 만지며 기도하면 이루어진다는데..
미사가 끝나고 다음 미사를 위해 얼른 나와야 했다. 그래도 사진을 찍을 수 있어 다행이었다.
밖으로 나오자 대성당 광장에 벌써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왜냐하면 일요일 정오에는 항상 교황님이 직접 나오셔서 강복을 해주시기 때문이다. 나도 얼른 가서 교황님이 나오시기를 기다렸다.
정확히 12시가 되자 교황님이 나오셨다. 비록 멀리서 스피커로 목소리만 들을 수 있었지만 그래도 교황님께 직접 강복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 감격스러웠다.
이제 정말 바티칸 대성당을 떠나야 할 시간이다. 아쉬워서 사진도 한 번 더 찍고.
때마침 종소리가 울려 영상으로도 담아 보았다.
화해의 길을 지나 엄마의 지갑을 사기 위해 수공예 가죽 제품 가게인 '라 셀라'를 찾아가다가 산탄젤로 성을 지나가게 되었다. 이탈리아 건물들은 멀리서 보아도 엽서의 한 장면이 따로 없다.
트레비 분수 근처에 있는 수공예 가죽 제품 가게 '라 셀라', 엄마가 지갑이 필요하다고 하셨는데 명품 가게는 너무 비싸고 해서 관광객들에게 인기가 있다는 '라 셀라'에 왔다. 직접 수공업으로 가죽 제품을 만든다고 한다. 종류가 많진 않았지만 튼튼해 보이긴 했다. 다만 가죽 제품이다 보니 조금 무겁다는 것이 흠.
엄마는 마음에 드는 장지갑을 고르셨는데 210유로, 한화로 약 26만원 정도 했다. 아빠는 허리띠를 하나 고르셨다. 공항에서 택스 리펀을 받으라고 친절하게 알려주셨다. 택스 리펀은 처음 해보는데 숙소에 가면 정보를 찾아 보아야 겠다.
시간이 조금 남아서 숙소로 바로 들어가기가 아쉬워 로마 3대 성당(바티칸 대성당, 산타 마리아 마조레 성당, 산 조반니 인 라테라노 성당) 중에 하나라는 '산 조반니 인 라테라노 성당'에 들렀다. 길이가 130m에 달하는 이 성당은 아비뇽 유수(1305년~1377년)가 있기 전까지 1000년 동안 교황님의 거주지였다고 한다. 지금도 교황님이 선출되면 처음 방문하는 곳이 바로 이 성당이라고 한다. 이 성당은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자신의 아내인 '라테라노' 가문의 화우스타의 땅을 315년에 교황에게 기증했고 처음으로 대규모의 성당이 이 곳에 지어져 이름에 '라테라노'가 들어간다고 한다.
천개 밑에는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의 두개골이 모셔져 있다고 한다. 그리고 이 성당에는 최후의 만찬 때 사용하던 식탁이 보관되어 있다고.
천개
아름다운 천정
역시나 바닥의 타일은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다.
성당의 전면부. 성당 구경을 마치고 나오니 날이 어두워지고 있었다.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우리는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테르미니 역 지하에 있는 '코나드' 슈퍼에서 산 우유. 라떼라고 적혀있다. 맛은 그냥 우유 맛? 생각해보니 우유를 500mL 플라스틱 병에 넣어 파는 것이 새로웠다. 우리도 그런 우유가 있나? 갑자기 궁금해진다.
지금은 생각나지 않지만 숙소로 돌아와 저녁으로 아마도 라면이나 누룽지탕을 먹었을 것이다.
마지막 밤이라 생각하니 기분이 묘했다. 유럽으로 여행을 오면 이탈리아를 제일 먼저 와 보고 싶었다. 고대의 대 제국 로마의 모습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로마의 수준 높은 문화, 기술, 음식 등이 궁금하기도 했고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로마에 왔으면 로마법을 따라야 한다' 등 유럽의 역사와 문화에는 언제나 로마의 그것들이 녹아있어 더욱 이탈리아라는 나라에 가보고 싶었다.
여행을 마치고 나니 미루어 두었던 숙제를 한 것처럼 무척 기쁘고 홀가분하고 만족스러웠다. 버킷리스트 하나가 지워지는 느낌. 오늘 밤 아쉬움과 기쁨이 교차하는 밤이 될 것 같다.
'해외여행 > 이탈리아(2017)'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탈리아 여행기(에필로그) (0) | 2017.11.17 |
---|---|
이탈리아 여행기(10일차, 2017.2.6.월)-귀국 (0) | 2017.11.15 |
이탈리아 여행기(8일차, 2017.2.4.토)-[베네치아] 아카데미아 미술관, 곤돌라, 수산시장 (0) | 2017.11.08 |
이탈리아 여행기(7일차, 2017.2.3.목)-[베네치아] 산 마르코 광장, 산 마르코 대성당, 탄식의 다리, 비발디 음악회 (0) | 2017.11.02 |
이탈리아 여행기(6일차, 2017.2.2.목)-[바티칸] 바티칸 대성당, 산탄젤로 성 (0) | 2017.10.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