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일본(2019)

오키나와 여행기(2일차, 2019.7.31.수)-[토카시키 섬] 토카시키 섬, 토카시키 마을 산책

anna325 2021. 9. 7. 22:15

(이 글에서 설명은 '프렌즈 오키나와-전명윤, 김영남'을 참고하여 썼다.)

 

오늘은 토마리 항에서 배를 타고 토카시키 섬으로 들어가는 날이다. 하늘도 맑고 날씨도 화창해서 배를 타기 딱 좋은 날이었다. 

아침으로는 한국에서 가져 온 신라면 컵라면 2개와 역시 한국에서 가져온 햇반 1개, 그리고 어제 패밀리 마트에서 산 스팸 주먹밥 1개를 엄마랑 둘이 사이좋게 나누어 먹었다. 컵라면은 시간과 장소를 불문하고 언제나 옳다. 어제 산 주먹밥도 스팸이 들어있어서 그런지 맛이 괜찮았다. 

아침을 먹고 짐을 싸서 체크아웃을 했다. 배가 10시에 떠나니 그리 서둘러 갈 필요는 없었다. 숙소에서 토마리 항까지 걸어서 5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기 때문이다. 아침 8시 30분쯤 숙소를 나선 것 같은데 구글맵이 알려주는 대로 걷다 보니 항구 주변의 사람들은 벌써 잠에서 깨어나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었다. 

토카시키 섬은 동중국해에 있는 작은 섬들로 이루어진 케라마 제도 중에서 가장 큰 섬이다. 류큐 왕국 시절에는 중국으로 뱃길을 통해 조공단을 보낼 때 언제나 토카시키 섬 사람들을 데리고 갈 만큼 오키나와 제일의 선원을 배출했던 곳이라고 한다. 이런 강인함 때문인지 적은 인구에도 불구하고 군인의 수가 많은 편이었고, 때문에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토카시키 섬 인구의 절반 가량이 집단 자살하는 일도 발생했다고 한다. 

 

이곳저곳 구경하며 천천히 걷다보니 금방 토마린 항의 대합실에 도착했다. 우선 매표소에 가서 예약 확인서를 보여주고 승선 신청서를 작성했다. 나는 한국에서 미리 한 달 전쯤에 홈페이지(tokashiki-ferry.jp)에 들어가 예약을 했었는데 토마리 항에서 토카시키 항까지 가는 배는 1시간 10분쯤 걸리는 페리로, 오는 배는 35분이 걸리는 고속선으로 예약을 했다. 매표소에서 가격을 확인하니 페리는 편도 1인당 1,660엔(18,127원)이고 고속선은 편도 1인당 2,490엔(27,190원)이었다.

시간이 1시간 이상 남아서 대합실도 구경하고 화장실도 다녀오고 했는데 대합실은 에어컨을 틀지 않는지 너무 더워서 대합실 안에 있던 여행사 사무실로 들어갔더니 여기는 에어컨을 빵빵하게 틀어놓았는지 무척 시원했다. 그래서 여기서 기다리기로 했는데 엄마가 피곤하셨는지 계속 앉아서 꾸벅꾸벅 조시길래 대합실 안에 있던 편의점에 들어가 카라멜 마끼아또(148엔, 1,616원)를 사다 드렸다. 근데 편의점이 너무 작고 통로도 좁아서 사람 한 명도 다니기가 힘들 정도였다. 이런 협소한 공간에서도 편의점을 할 수 있다니 정말 대단하다. 아무튼 그러고서도 시간이 남아 엄마는 쉬시라고 하고 나 혼자 페리를 타는 곳으로 한 번 나가 보았다. 시간이 9시 정도 밖에 안 되었는데 우리가 탈 배가 벌써 정박해 있었고 선원들이 부지런히 승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배가 생각보다 크고 깨끗해서 일단 안심이 되었다. 배타는 곳 주변을 여기저기 구경하다가 다시 엄마가 계신 곳으로 돌아갔는데 9시 30분정도 되자 대합실에 있던 사람들이 웅성웅성거리며 하나 둘 짐을 챙겨 배 타는 곳으로 가기 시작했다. 그래서 우리도 짐을 가지고 나왔더니 사람들이 배 앞에 길게 줄을 서 있어 우리도 줄을 서서 기다렸다. 

 

10시가 가까워 오자 드디어 배로 들어가는 문이 열리고 승선이 시작되었다. 이제 정말로 맑고 아름다운 바다가 그토록 절경이라는 토카시키 섬으로 들어갈 수 있겠구나! 가슴이 조금씩 설레기 시작했다. 배에 들어가 보니 방처럼 되어 있는 넓은 마루 바닥에 먼저 들어온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우리도 어디에 앉아야 하나 자리를 찾아 두리번거리다가 창가 쪽에 자리를 잡고 짐도 한 쪽에 잘 놓았다. 우리가 들어온 후에도 사람들이 계속계속 들어와 떠날 시간이 되자 마루에 사람들이 꽉 찼다. 여기도 지금이 여름 휴가 기간인지 대부분 여행객들인 것 같았다. 10시가 되자 드디어 배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자리도 잡았고 배도 출발했으니 슬슬 밖으로 나가보아야겠다. 1시간 10분 동안 배 안에 앉아 있으면 지루하기도 하고 온 몸이 찌뿌둥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람도 쐬고 항구의 모습도 볼 결 갑판 위로 나왔더니 구름이 예술이었던 하늘 아래로 오밀조밀한 작은 항구가 조금씩 멀어지고 있었다. 

 

여기는 하늘 색깔뿐만 아니라 바다 색깔이 참 멋있었다. 나는 지금까지 살면서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다른 나라에서도 이렇게 선명하고 진한 파란색의 바다 색깔을 본 적이 없었다. 맑은 물에 진한 파란색 물감을 풀어 놓은 것처럼 너무나 푸르고 아름다운 색이었다. 정말이지 붓에 살짝 찍어 도화지에 한 번 스윽 그리면 금방이라도 멋진 바다 그림을 한 장 그릴 수 있을 것 같았다. 바다 색깔이 어쩜 이리도 아름다울 수 있을까? 그 때도 그랬지만 사진을 보고 있는 지금도 감탄이 절로 나온다. 게다가 이 날 날씨가 참 좋아서 파도도 없고 물결도 잔잔해 기분이 더 좋았다. 

 

뱃머리 쪽으로도 한 번 가보았다. 여기에도 사람들이 복작복작 많이 모여 있었다. 이 배는 새로 페인트 칠을 했는지 아니면 만들어진 지 얼마 되지 않은 새 배인지 구석구석이 무척 깔끔하고 깨끗했다.

뱃머리 앞으로 길게 보이는 섬이 바로 토카시키 섬이다. 섬이 생각보다 길고 컸다. 하긴 섬에서 이동할 때 버스나 택시를 이용해야 할 정도면 큰 섬이지. 이제 섬에 다 와가나 보다. 

 

토카시키 섬 옆으로 홀로 외로이 우뚝 솟아있는 작은 섬이 있어서 한 번 찍어 보았다.

 

가까이에 항구가 보인다. 이제 항구에 다 와가나 보다.

 

더 가까이 다가가니 작은 항구가 조금씩 모습을 드러냈다. 작은 항구는 정갈하고 소박한 일본스러운 모습으로 우리를 반겨주었다. 토카시키 섬에는 3개의 마을이 있는데 토카시키 항을 중심으로 형성된 토카시키 마을, 내일 가 볼 아하렌 항과 아하렌 비치를 중심으로 형성된 아하렌 마을, 토카시쿠 비치를 중심으로 형성된 토카시쿠 마을이 있다. 우리가 오늘 도착한 곳은 토카시키 항이 있는 토카시키 마을이다. 

선착장에 내려 구글맵을 켜고 숙소를 찾아가기 시작했다. 숙소 이름은 '조이풀 칭구시(1박 8,000엔, 86,784원, 현지에서 지불, 조식 불포함, 아고다 예약)'였다. 선착장에서 한 10분 정도 걸어서 숙소에 도착했다. 가는 길에 작은 슈퍼도 보았는데 이따가 시간이 있으면 한 번 구경해보아야겠다. 입구 바로 앞 1층에 식당이 있었는데 여기가 숙소의 식당 겸 프론트였다. 식당 안으로 들어가보니 입식 식탁 몇 개와 좌식 식탁 몇 개가 있는 작은 식당이었다. 식당 안에 젊은 여자가 있어 예약을 했다고 이야기하니 방 열쇠를 주었다. 방이 모두 2층에 있어 엄마랑 둘이서 계단으로 짐을 옮기느라 많이 힘들었다. 

 

방으로 들어가 보니 짜잔! 이런 모습으로 우리를 반겨주었다. 그동안 말로만 듣던 다다미를 깐 다다미방에 벽은 벽지를 바르지 않아 벽돌이 그대로 보였다. 에어컨은 몇 십 년 동안 한 번도 필터를 갈지 않은 듯 때에 절어 있었고 저 앞으로 보이는 창문은 레일이 고장이 났는지 뻑뻑해서 잘 열리지 않았다. 이불도 그리 깨끗한 편이 아니었는데 결정적으로 뜨악했던 건 다다미 위로 개미가 자유롭게 활보하고 다녔다는 것! 오늘 밤에 잠을 잘 잘 수 있을지 벌써부터 걱정이 되었다. 

 

욕실도 사정은 마찬가지. 정말 30년은 되어 보이는 세면대와 변기, 그리고 거울이 달려 있는 수건장, 때가 잔뜩 낀 타일들까지 맘에 드는 구석이 하나도 없었다. 

어쩐지 지금 여기도 우리나라처럼 여름 휴가 극성수기일텐데 1박 요금이 8,000엔으로 너무 저렴하다 싶었다. 다 이유가 있었구먼. 돈이 좀 들더라도 더 좋은 숙소를 예약할 걸 하는 후회가 들었지만 이미 예약을 했으니 어쩔 수 없지. 그래도 하룻밤을 여기서 보내야할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한숨이 나왔다. 

 

방에 대한 실망을 뒤로 한 채, 마침 점심 때가 되어서 밥은 먹어야하겠기에 1층에 있는 식당으로 다시 내려가 보았다. 부부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두 남녀가 있었는데 나중에 보니 남자는 주방장이고 여자는 서빙을 했다. 점심 때였지만 손님이 한 명도 없어 작은 식당이 무척이나 한산했다. 인터넷에서 찾아보았을 때는 여기 음식이 참 맛있다고 들어서 내심 기대를 하고 왔는데 막상 방을 보니 식당도 그다지 신뢰가 가지 않았다. 그래도 이 근처에 제대로 된 식당이 거의 없어서 일말의 희망을 가지고 한 번 먹어보기로 했다. 음식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며 식당을 둘러보니 너무나 일본스러운 모습이었다. 저녁에는 술도 파는지 작은 바도 있고 가구는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하지만 으레 세상사가 마음대로 되지 않듯이 음식이 나왔을 때 혹시나 하는 기대감이 역시나 하는 실망감으로 바뀌고 말았다. 우리가 시킨 음식은 '삼겹살 간장 볶음'과 '밥'이 같이 나오는 메뉴(1인분 800엔, 8,736원)였는데 여기에 미소 된장국 한 가지만 곁들여 정말 달랑 이렇게만 나왔다. 주문한 음식만 나오는 일본 식당 스타일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밑반찬 한 가지 정도는 줄 수 있을텐데 너무 인정이 없고만. 설상가상으로 삼겹살 간장 볶음도 그다지 맛이 없었다. 그나마 미소 된장국이 있어서 같이 곁들여 먹었기에 망정이지 된장국마저 없었으면 잘 넘어가지도 않는 맛없는 삼겹살 간장 볶음과 밥만 꾸역꾸역 먹어야 했을 것이다. 일본에서 이렇게 맛없는 식사를 한 적도 처음이다. 엄마도 실망하셨는지 식사를 하시는 내내 아무 말씀이 없었다. 일단 배가 고프니 먹기는 먹었는데 방을 보았을 때도 실망을 했는데 식사까지 이 모양이니 기분이 매우 언짢았다. 에휴. 그래도 어쩔 수 없지 않은가. 숙소를 예약할 때 둘러보고 예약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받아들이는 수밖에. 지금으로서는 어쩔 도리가 없다.

점심을 먹고는 혹시나 오늘 토카시쿠 비치에 가는 택시가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항구로 다시 가보기로 했다. 토카시키 섬에는 유명한 해변이 두 군데가 있는데 하나는 제일 유명한 아하렌 비치이고 하나는 토카시키 항구에서 가까운 토카시쿠 비치이다. 아하렌 비치는 내일 숙소를 그 쪽으로 옮기면서 갈 예정이라 오늘은 여기서 가까운 토카시쿠 비치에 가볼까 하고 길을 나서는 참이다. 혹시 갈 수 있을지도 모르니 수영복으로 미리 갈아입고 가볍게 짐도 챙겨서 숙소를 나섰다. 항구로 가는 길에 아까 숙소로 오다가 항구 근처에서 보았던 작은 슈퍼에도 들러 구경을 했는데 생필품과 식재료만 몇 가지 있는 정말 작은 슈퍼여서 물건을 사지는 않고 구경만 했다. 다시 항구로 가서 대합실에 들러 여기저기 둘러보다가 매표소 직원에게 오늘 토카시쿠 비치에 갈 수 있는 택시가 있는지 물어보니 친절하게 아는 택시 기사에게 전화를 걸어 주었다. 그런데 전화를 끊은 직원은 아쉽게도 오늘은 택시들이 모두 바빠서 이용할 수 없다고 했다. 토카시쿠 비치까지 갈 수 있는 방법이 택시밖에 없는데 갈 수 있는 택시가 없다고 하고, 또 가는 것도 가는 건데 다시 올 때도 택시가 있을지 몰라서 아쉽지만 토카시쿠 비치는 가지 않기로 했다.

오후에 시간이 비는데 그럼 무엇을 할까 생각하다가 다시 숙소로 돌아가 옷을 갈아입고 동네 구경을 하기로 했다. 대합실을 나오다가 이따 저녁이나 먹을까 하고 아까 들어갈 때 보았던 대합실 2층에 있는 식당을 한 번 가보았는데 하필 사장님이 여름 휴가 중이었다. 그럼 오늘 저녁도 맛이 정말 없었던 숙소 식당에서 먹어야 하나 보다. 

 

옷을 갈아입고 제일 먼저 간 곳은 우리 숙소 바로 건너편에 있었던 토카시키 우체국이었다. 나는 해외여행을 가면 언제부턴가 우체국에 들러 편지나 엽서를 써서 한국의 우리 집이나 친한 지인들에게 보내곤 했었는데 여기서도 그냥 지나칠 수 없지. 일본 여행을 온 지 이틀밖에 지나지 않아서 그리 쓸 말은 많이 없었지만 그래도 내가 언제 또 한국의 섬도 아니고 일본의 섬에서 편지를 써 볼까 싶어 엽서를 한 장(185엔, 2,020원)사서 한국의 나에게 보내기로 했다. 그래도 엽서를 쓰기 시작하니 할 말이 많아져서 엽서 한 장을 빼곡하게 꽉 채웠다. 엽서를 다 써서 이제 부치기만 하면 되는데 우체국 직원이 엽서도 해외로 보낼 때는 편지 봉투에 넣어서 보내야 한다고 했다. 다른 나라에서는 그냥 엽서만 부치는 게 가능했는데 역시 일본은 꼼꼼하다고 해야 하는지, 아님 까다롭다고 해야 하는지 아무튼 편지 봉투를 사라고 하니 사야지 별 수 있나. 편지 봉투를 사려고 하니 한 묶음(62엔, 677원)에 두 장이 들어 있어 직원에게 한 장만 살 수 있는지 물어보니 한 묶음을 다 사야한다고 해서 어쩔 수 없이 두 장을 샀다. 다른 여행객들도 이 곳에서 기념 엽서나 편지를 많이 보내는지 창구에 여러 가지 문양을 새긴 기념 도장이 다양하게 있어 나도 편지 봉투에 이것저것 기념이 될 만한 도장을 찍어 보았다. 도장까지 다 찍었으니 이제 정말 완성! 우표(90엔, 982원)를 붙여서 한국으로 보내면 된다. 기념 엽서야! 한국까지 안전하게 잘 도착해서 우리 다시 반갑게 만나자!

 

우체국에서 나와서는 마을을 한 바퀴 돌아보기로 했다. 우체국을 지나 골목길을 걸어가면 바로 중앙공민관이 있고 그 맞은편에 촌사무소와 그 옆에 JA오키나와라는 이 마을에서 가장 큰 슈퍼가 나온다. 말하자면 이 곳이 토카시키 마을의 중심부라고 할 수 있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칠 수 없듯이 우리도 슈퍼를 그냥 지나칠 수 없지. 슈퍼 구경도 할 겸 들어가 보았는데 아까 보았던 슈퍼보다 훨씬 크고 물건과 식재료 종류도 훨씬 많았다. 이것저것 구경하다가 아이스크림이 있어 바닐라와 쿠키맛이 나는 블루 씰 아이스크림과 우리나라의 '붕어 싸만코'처럼 생긴 아이스크림을 샀다. 블루 씰 아이스크림도 맛있었는데 붕어싸만코를 닮은 아이스크림은 모양뿐만 아니라 맛도 우리나라의 붕어 싸만코와 똑같은 맛이 나서 정말 깜짝 놀랐다. 아마도 우리나라 회사가 모방을 했던지, 일본의 회사가 모방을 한 것 같았다. 그렇지 않고서야 붕어 모양의 과자 안에 팥 앙금과 바닐라 맛 아이스크림이 들어있고 맛까지 똑같은 아이스크림이 있을 수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스크림을 맛있게 먹고 이제 정말로 마을을 한 바퀴 돌아보기로 했다. 작은 섬이라 마을이 그다지 크지 않아서 돌아보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지는 않았다. 일반 가정집도 있고 아기자기하게 꾸며 놓은 작은 펜션도 있고 층수가 얼마 되지 않는 연립주택도 있었다. 마을 끝에 가니 작은 냇가가 있었고 그 옆으로는 논과 밭, 그리고 산도 있었다. 길거리에 지나다니는 사람도 별로 없고 차도 별로 없어서 동네가 무척 조용하고 평화로웠다. 저녁 찬거리를 사러 가시는지 아까 들렀던 JA오키나와 슈퍼 쪽으로 향하는 연세 지긋한 할머니나 할아버지가 가끔 보일 뿐이었다. 

아까는 토카시쿠 비치에 가고 싶었지만 가지 못해서 무척 속상하고 갑자기 비어 버린 오후의 시간이 너무 아깝게 느껴졌는데 이런 고즈넉한 마을의 골목길을 걷다 보니 '그래, 내가 또 언제 이렇게 일본의 작은 섬에 와서 동네를 한 바퀴 돌아보겠어.'하는 생각이 들면서 점점 지금의 이 시간들이 참 좋아지기 시작했다.

 

섬을 한 바퀴 돌아보고 다시 JA오키나와 슈퍼마켓에 도착했다. 작은 마을이지만 그래도 한 바퀴 돌고나니 다리도 아프고 힘들어서 어디 쉴만한 곳이 있는지 두리번거리며 찾아보았다. 마침 슈퍼마켓 맞은편에 중앙공민관(지역에서 교양, 문화, 스포츠 등의 활동을 통해 주민의 자치능력의 향상과 지역 만들기와 인간 만들기에 기여하는 종합적인 사회교육시설, 지역의 평생교육 장소)이 있었는데 문은 굳게 잠겨 있었지만 문 앞에 긴 벤치가 있어 여기서 앉아서 쉬기로 했다. 벤치에 앉으니 슈퍼마켓에 사람들이 오고가는 모습이 한 눈에 보였다. 슈퍼마켓의 왼쪽편으로는 촌사무소도 있고 우리가 앉아 있는 중앙공민관도 있고 중앙공민관 뒤편으로는 아까 들렀던 우체국도 있는 것을 보니 아마도 여기가 이 마을의 중심지인 것 같았다.

 

JA 오키나와 슈퍼마켓 옆에 있는 촌사무소. 문밖에서 잠시 들여다보니 우리나라의 면사무소처럼 마을의 여러가지 일을 처리하는 것 같았다.

 

공민관 앞에서 한참을 앉아 쉬다가 이번에는 아까 갔었던 마을길 말고 그 반대편 마을길로 걸음을 옮겨보았다. 지극히 소박하고 일본스러운 집들이 도로를 사이에 두고 이어있었다. 어떤 집은 대문 기둥에 시사를 올려놓은 집도 있었다. 시사는 사자를 표현한 조형물인데 보통 암, 수 한 쌍씩 설치한다. 집에 시사를 두면 집으로 들어오는 액운을 막아주고 수컷은 입을 벌리고 복을 물어오고 암컷은 입을 다물어 그 복이 나가지 않게 한다고 한다. 오키나와에 가면 대부분의 건물에서 시사를 볼 수 있다. 

작은 마을이라 그런지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보기가 힘들었다. 길을 따라 계속 걸어가다보니 마을 유치원이 나왔는데 하원 시간인지 아이들이 마중나온 부모님을 따라 하나 둘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호기심에 유치원 건물 뒷편으로 가보니 넓은 잔디밭이 나왔다. 아마도 유치원 아이들이 활동하는 운동장인 것 같았다. 한 젊은이가 달리기 운동을 하려는지 몸을 풀고 있었다. 

 

유치원 구경까지 마치고 다시 길을 되짚어 오다가 아까 JA오키나와 슈퍼마켓에 들렀을 때 눈여겨 봐 두었던 미니 사과 요거트를 3개(1개에 66엔, 720원) 샀다. 숙소에 돌아와서 먹어보니 상큼하고 먹을만 했다.

 

숙소에 돌아오니 저녁을 먹을 시간이 되어서 1층에 있는 식당으로 갔다. 아까 마을을 둘러볼 때 저녁을 먹을만한 식당이 있는지 유심히 보았는데 마땅한 곳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이 식당으로 다시 오게 된 것이다. 정말 오기 싫었지만 그래도 먹고 살아야하겠기에 왔는데 점심 때보다는 손님들이 많았다. 우리도 한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아 점심 때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메뉴판을 정독했다. 그리고 심혈을 기울여 시킨 음식은 후라이드 치킨+밥+미소 된장국 세트(1,000엔, 10,920원)와 버터 생선 가라아게(튀김, 1,500엔, 16,380원), 밥 1공기(200엔, 2,184원)였다. 그런데 이런! 이번에도 대 실망!

 

후라이드 치킨은 고작 4조각이 나왔고 버터 생선 가라아게는 크기도 작고 올라가 있는 채소도 달랑 양파뿐이었다. 평소에 밥을 먹을 때 최소한 반찬을 서너가지는 놓고 먹는 우리네 한국인의 정서로는 참 이해하기 어려운 메뉴였다. 게다가 음식에 비해 가격은 또 왜 이렇게 비싼 건지. 저 가격이면 우리나라에서 다양한 종류의 반찬이 제공되는 한식 뷔페나 백반은 물론이요, 웬만한 단품 음식도 배부르게 먹을 수 있는데 여름 휴가 성수기인데다 섬 지역이라 그런지 바가지가 너무 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어쩌랴. 먹어야 사니 어쩔 수 없이 먹어야지. 꾸역꾸역 밥을 먹긴 먹었다만 반찬이 부실해서 그런지 배부르다는 느낌이 전혀 없었다.

너무나 실망스러운 저녁 식사를 마치고 숙소에서 쉬면서 아쉬운 마음을 달래고 있는데 문득 가이드북에서 읽었던 오키나와의 밤하늘이 무척 화려하다는 이야기가 생각났다. 오키나와에서도 작은 섬마을, 그 섬마을에서도 더 작은 토카시키 마을에 왔으니 밤하늘이 얼마나 화려할까 한 번 보고 싶었다. 그래서 계단을 통해 옥상으로 올라가 보았다. 마을에 가로등도 켜 있고 다른 숙소나 집에도 불이 아직 켜 있어서 그런지 상상했던 것보다는 별이 많이 보이지 않았지만 그래도 한국에서 보던 밤하늘보다 훨씬 화려했다. 엄마랑 함께 고개가 아프도록 오랫동안 밤하늘을 올려다 보면서 어떤 별자리가 있는지 찾아보았다. 한 7~8년 전쯤에 2년 정도 별에 관심을 가졌던 적이 있었다. 동호회 활동도 하고 천문 관련 책도 사서 보고 연수도 듣고 하면서 열심히 공부를 했었는데 초반에 너무 열정을 쏟았는지 시간이 갈수록 주로 밤에 활동을 해야 하는 동호회 활동이 체력적으로 많이 힘들어졌다. 그러면서 마음도 점점 멀어져 지금은 가끔 시골집에 내려가면 계절별로 아는 별자리만 몇 개 보고는 한다. 그나마 세월이 지나 알았던 별자리 몇 개 마저도 지금은 가물가물하다. 그래도 그 때의 그 열정 가득했던 나 자신이 가끔은 그립기도 하다. 한참을 보고는 다시 방으로 내려왔다.

이제 자야할 시간이다. 오늘은 특별히 관광을 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오후 내내 여기저기 돌아다녀서 그런지 무척 피곤했다. 이부자리를 펴고 누웠는데 문득 아까 방에 처음 들어올 때 보았던 다다미 위의 개미들이 생각이 났다. 그래서 다다미 위를 다시 살펴보니 여전히 개미들이 부지런히 활보하고 있어 요 위에 누우면 개미들이 내 몸 위로 스멀스멀 기어다니면 어쩌나 하는 상상이 들어 마음이 심란해졌다. 게다가 설상가상으로 에어컨을 켜려고 보니 에어컨 필터를 약 30여년 동안 한 번도 갈지 않았는지 먼지와 때가 잔뜩 끼어있어 오늘 밤에 에어컨을 켜고 자다가는 어떤 병에 걸릴지 무서워져서 방 안은 정말이지 찜질방 수준이었는데 에어컨도 켜지 못하고 잠자리에 들어야 했다. 그런데 웬걸! 아쉬운대로 창문이라도 열고 자려고 하니 창문틀이 낡아서 틀어졌는지 소름끼치도록 소리만 요란하고 뻑뻑해서 잘 열리지도 않았다. 그래도 힘을 내 조금 열어보니 아뿔싸! 방충망도 없고 창문 앞으로 난 작은 발코니에는 먼지가 덕지덕지 앉아 있었다. 아마도 창문을 열어 놓으면 모기와 먼지가 룰루랄라 방 안으로 들어와 밤새 파티를 벌일 것 같아 창문도 닫고 잘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방문을 열어 놓자니 누가 들어올까봐 무서워서 못 열어 놓겠고 어쩔 수 없이 화장실에 복도쪽으로 난 작은 창문이 있어 그걸 열어 놓고 잠자리에 들었는데 방 안은 이미 찜질방 수준이라 너무 더워서 잠이 쉽게 오지 않았다. 결국 이리 뒤척, 저리 뒤척이다 한숨도 못자고 아침을 맞이했다. 그동안 여행을 많이 다녀보았지만 이렇게 낡고 허름하고 위생 상태도 엉망인 숙소는 예전에 갔었던 통영의 소매물도 민박집 이후 처음이다. 숙박비가 저렴해서 좋아라 하고 예약했더니 저렴한 이유가 다 있었구만. 다음에는 돈이 조금 더 들더라도 깨끗하고 좋은 숙소를 예약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