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일본(2019)

오키나와 여행기(4일차, 2019.8.2.금)-[나고시] 나고시로 출발

anna325 2021. 10. 25. 23:06

(이 글에서 설명은 '프렌즈 오키나와-전명윤, 김영남'을 참고하여 썼다.)

 

간밤에 깨끗한 이부자리에서 푹 자고 일어났더니 기분이 얼마나 상쾌하던지 돈이 좀 비싸더라도 좋은 숙소에서 자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엊그제 토카시키 마을에서 묵었던 숙소에서는 밤새 한숨도 못자서 어제 많이 피곤했었는데 하룻밤 잘 자고 일어났더니 피곤이 말끔히 사라지고 다시 생기가 도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일어나보니 창밖으로 비오는 소리가 들렸다. 오늘은 배를 타고 다시 나하시로 나가는 날인데 배가 뜰 수 있을지 조금 걱정이 되었다. 그래도 어제 비가 오지 않고 오늘 와서 정말 다행이었다. 만약 오늘이 해변으로 놀러가는 날이었다면 물놀이도 못하고 꼼짝없이 숙소에서 하루종일 시간을 보냈을 뻔 했다. 그럼 얼마나 억울하고 아쉬웠을까. 차라리 오늘 비가 오는 것을 감사하게 생각해야겠다.

 

간단하게 씻고 아침을 먹으러 1층으로 내려가니 사장님이 어제 저녁과 마찬가지로 밥과 국, 반찬이 담긴 쟁반을 갖다 주셨다. 오늘 아침 밥상에는 반찬이 어제 저녁보다 두 가지나 많은 아홉 가지나 나와서 눈이 더 호강했다. 국은 어제 저녁과 마찬가지로 두부가 들어간 미소 된장국이 나왔고 반찬은 고등어 구이 한 토막, 달걀 후라이, 김, 채소 볶음, 해초 무침, 매쉬드 포테이토, 고로케, 매실 장아찌가 나왔다. 어떤 사람들은 아침에 입맛이 없어서 밥을 많이 못 먹는다고 하는데 엄마와 나는 지금까지 살면서 밥맛이 없어서 아침을 먹지 못한 적은 없었다. 아침이든, 점심이든, 저녁이든 식사 시간은 언제나 밥맛이 너무 좋아서 탈이다. 다만 아쉬운 것은 엄마도 나도 살이 잘 찌는 체질이라 음식을 먹고 싶은 대로, 먹고 싶은 시간에 양껏 먹지 못한다는 것이다. 우리 모녀는 식성부터 체질까지 어쩜 이리도 닮았는지. 우리 딸은 제발 바라건데 그런 점에서는 나를 닮지 말고 아빠를 닮았으면 좋겠다.

이제 본격적으로 아침 식사를 해볼까. 먼저 국을 한 숟가락 떠 먹으니 여전히 깊고 진하며 구수했다. 반찬도 한 가지, 한가지 참으로 정갈하고 감칠맛이 도는 것이 엄마와 나의 입맛에 딱 맞았다. 특히 고로케가 정말 맛있었는데 사장님한테 말씀드려서 한 접시 더 달라고 하고 싶은 걸 꾹 참았다. 노릇노릇 잘 구워진 고등어와 맛있게 익힌 달걀 반숙 후라이, 부드럽고 고소한 매쉬드 포테이토도 내가 좋아하는 반찬들이라 정말 맛있게 잘 먹었다. 반찬이 맛있기도 했고 내가 또 언제 일본의 민숙에서 이런 가정식을 먹어볼까 싶어 오늘 아침도 밥을 한 그릇 더 먹기로 했다. 사장님한테 말씀드리니 흔쾌히 밥을 한 그릇 더 떠 주셔서 엄마랑 나누어서 남은 반찬이랑 냠냠 맛있게 잘 먹었다. 이로써 오늘 아침 식사도 대만족!

식사를 마치고 방으로 돌아와 짐을 챙겼다. 이제 토카시키 섬을 떠나 다시 오키나와 본토로 돌아가야할 시간이다. 토카시키 항까지는 어제 사장님이 픽업을 해주셨던 것처럼 오늘도 픽업을 해주셔서 편하게 갈 수 있었다. 그런데 차를 타고 가는 동안 비가 점점 더 많이 내리고 바람도 거세져서 배가 뜰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일단 항구에 가보아야 알 것 같다. 항구에 도착해서 사장님이 짐을 내려주시고 우리에게 인사를 하셨다. 우리도 고마운 마음으로 인사를 건네고 헤어졌는데 마음이 왜 이리도 아쉬운 걸까. 그 새 이 섬에 정이 들었는지, 아니면 어제 너무 재미있게 놀고, 먹고, 쉬어서 더 있고 싶은 건지, 그것도 아니면 민숙에서 먹었던 식사가 하도 맛있어서 몇 번 더 먹고 싶은 건지, 나도 내 마음을 잘 모르겠다. 하지만 오늘 하루 더 숙소 예약을 하지 않은 것은 천만다행이다. 만약 예약을 했더라면 아침부터 비가 내려 꼼짝없이 숙소의 방에서 하루종일 뒹굴거리며 아까운 시간만 보내고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비가 어제 내리지 않고 오늘 내리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정말 운이 좋았다.

대합실로 들어가니 벌써 많은 사람들이 배를 타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가 탈 배는 오전 10시에 떠나는 '마린 라이너'(1인당 편도 2,490엔, 27,190원)였다. 이 배는 쾌속선으로 오키나와 토마린 항까지 약 40분 정도 걸린다. 그런데 배가 오기를 기다리는 사이 빗줄기는 더욱 굵어지고 바람까지 거세지고 있었다. 바람이 많이 부니 파도도 꽤 높게 쳤다. 비는 오더라도 바람이라도 좀 잦아들면 좋을 텐데 그런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아서 너무나 걱정스러웠다. 내내 걱정을 하며 배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10시가 가까워오자 드디어 배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대합실에서 승선하라는 방송이 나오자 배를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이 짐을 챙겨 배가 있는 곳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우리도 짐을 챙겨 사람들을 따라 갔다. 100m 남짓 되는 길을 걸어가는 동안에도 비바람이 어찌나 사납게 부는지 길 위에 지붕이 있고 우산을 썼는데도 얼굴을 제외하고 상의와 하의 할 것 없이 모두 흠뻑 젖고 말았다. 그 와중에 캐리어는 어찌나 무겁던지. 한 손은 우산을 받치고 한 손은 캐리어를 끄느라 그렇지 않아도 힘든데 비바람까지 몰아치니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어찌어찌 배에 타서 자리에 앉았다. 엊그제 탔던 페리와는 다르게 선내가 의자로 꽉 차 있어서 모든 승객들이 의자에 앉아서 갈 수 있어서 좋긴 했는데 페리보다는 훨씬 작은 배라 또 걱정스러웠다. 오늘 날씨도 안 좋은데 이렇게 작은 배를 타고 가다가 사고라도 나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짐도 대충 통로나 구석에 눈치껏 놓아야 해서 불편했다. 나는 바로 통로 쪽에 앉아서 토마린 항에 도착할 때까지 내내 큰 캐리어 손잡이를 붙잡고 갔다. 캐리어를 뉘어 놓으면 통로가 좁아져 사람들이 다닐 때 불편할 것 같고 그렇다고 세워 놓자니 배가 많이 흔들려서 맘대로 굴러다닐 것 같았기 때문이다. 승객들이 다 타고 좌석이 꽉 차자 배가 출발했다. 쾌속선이라고 하더니 바다를 가르며 정말 모터 보트처럼 쏜살같이 나아갔다. 물론 선박 회사에서도 이 정도 날씨는 안전하다고 판단해서 배를 운항시켰겠지만 갑자기 세월호 사건이 떠오르면서 바다 한 가운데서 사고가 나면 이 많은 승객들은 어쩌나 하는 생각에 가는 내내 걱정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눈은 배에서 틀어 놓은 TV를 보면서도 머릿속은 온통 걱정, 걱정, 걱정 뿐이었다. TV에서는 요리 프로그램이 나오고 있었는데 남자 진행자가 게스트로 나온 요리사와 함께 앞치마를 두르고 오늘의 메인 재료인 여주 요리를 배우고 있었다. TV를 보면서 마음을 가라앉히려고 노력했지만 결국 근심만 한 가득 안은 채 출발한 지 약 40분여 만에 토마린 항에 도착했다. 도착하고 나니 정말 땅이 꺼질 정도로 안도의 한숨이 나오고 그제서야 나는 웃음을 되찾았다. 사람들이 짐을 챙겨 선착장으로 나가기 시작해 우리도 짐을 챙겨 출구 쪽으로 가서 기다렸다. 그런데 엊그제 탔었던 페리는 큰 배라서 총 2층에다 선체가 높아 짐을 가지고도 타고 내릴 때 수월했는데 오늘 탄 쾌속선은 배가 작고 1층이라 계단을 타고 무거운 캐리어를 들고 배 위로 올라갔다가 다시 계단을 통해 선착장으로 내려가야 해서 여간 힘이 드는 것이 아니었다. 엄마는 고령이고 나는 임신 7개월이라서 더 힘이 들었다. 그래도 캐리어를 들고 젖 먹던 힘까지 다해 선착장에 내려왔고 그 후에도 다행히 별 탈 없이 지낼 수 있었다. 선착장을 나오면 바로 택시 승강장이 있는데 우리도 택시를 타기 위해 줄을 섰다. 오늘은 버스를 타고 나고시로 가는 날이라 나하 버스터미널에 가야 하기 때문이다. 조금 기다리자 우리 차례가 되어 택시를 탔는데 나이 지긋하신 기사분의 택시에 타게 되었다. 기사분이 내리더니 먼저 우리를 뒷자리로 안내하고 짐을 다 실어주셨다. 내가 경험한 바로는 일본의 택시 기사들은 우리나라 택시 기사와는 다르게 무척 친절한데 역시 이 기사분도 기대를 저버리지 않으셨다. 토마린 항에서 나하 버스터미널까지 약 10분 정도 걸렸고 택시비는 760엔(8,299원) 이었다. 비도 오는데 택시 덕분에 참 편하게 왔다. 

 

나하 버스터미널에 도착해서 1층 대합실로 들어가니 종합 안내소가 있어 우선 나고시로 가는 버스 시간표를 알아보았다. 안내소 직원은 여자였는데 나하 버스터미널에서 나고 버스터미널로 출발하는 시간표와 나고 버스터미널에서 나하 버스터미널로 출발하는 시간표까지 안내해주었고 게다가 출발 시간에 형광펜으로 밑줄까지 그어주면서 아주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었다. 버스비도 나고시까지 1인당 2,100엔(22,932원)이라고 알려주어 미리 준비할 수 있었다. 시간표를 사진찍어도 되는지 물어보니 된다고 하여 사진도 찍어 두었다. 이제 시간에 맞추어 버스 승강장으로 나가 버스 번호를 확인하고 타면 되겠다.

이렇게 버스 시간도 확인했으니 버스터미널 2층과 3층에 있는 쇼핑몰 구경도 하고 점심도 먹으러 올라가 볼까? 이 쇼핑몰은 모노레일 아사히바시 역과도 연결되어 있는데 오늘이 평일 오전이라 그런지 사람이 그렇게 많지는 않았다. 아침에 민숙에서 밥을 두 그릇이나 먹었더니 아직까지 배도 부르고 12시가 안 되어서 점심을 먹기에는 이른 시간이라 먼저 쇼핑몰 구경부터 했다. 옷가게, 그릇가게, 식료품 가게, 제과점, 카페, 아이스크림 가게, 초밥집, 양식 레스토랑 등 두 층밖에 되지 않는데도 요모조모 많은 가게들이 모여 있어서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나는 맘에 드는 게 없어서 사진 않았지만 큰 쇼핑몰이 아니라서 한 바퀴 돌기도 힘도 별로 안 들고 다양한 가게들이 있어서 한 번쯤 구경하기에는 좋은 곳이었다. 

 

쇼핑몰 구경을 다 하고 나서 시계를 보니 12시가 넘었다. 나고 버스터미널까지 1시간 30분 정도 걸리니 이제 점심을 먹고 버스를 타러 가야 겠다. 점심으로 어떤 걸 먹을까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호시노 커피'라는 카페 겸 레스토랑에 들렀다. 이 곳은 실내외 인테리어가 예사롭지 않았는데 마치 1930년대 경성에 새로 생긴 서양식 카페처럼 검은색을 주로 써서 고급스러운 분위기가 났고 일하는 직원들도 모두 하얀색과 검은색으로 구성된 유니폼을 단정하게 입고 있어서 우리가 마치 집사의 시중을 받는 귀부인이라도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직 배가 많이 고프진 않아서 밥 생각이 많지 않았지만 그래도 이왕에 먹는 거 일본스러운 음식을 먹어봐야 겠다. 직원이 가져다 준 메뉴판을 정독하고 나서 우리가 주문한 음식은 함박 스테이크(830엔, 9,063원), 소고기 오므라이스(800엔, 8,736원), 오렌지 주스(280엔, 3,057원) 2잔이었다. 가격이 우리나라 음식점보다 더 저렴해보이는 건 기분 탓인가? 우리나라에서는 함박 스테이크나 오므라이스는 고급 음식으로 10,000원대인 걸로 아는데 여기서는 일본의 대중적인 음식이라 그런지 저렴했다. 김치찌개가 우리나라에서는 7,000원~8,000원 정도 하는데 해외에 나가면 10,000원이 넘는 것과 같은 이치 아닐까 생각한다. 함박스테이크를 우리나라에서는 납작하게 요리하는데 여기는 마치 골프공처럼 동그란 게 재미있었다. 그나저나 저렇게 동그랗게 만들면 팬에 구울 때 잘 익을까? 아니면 오븐에 구울 수도 있지만 어떤 방법으로 익히든 속까지 잘 익히는 게 기술이 아닐까 싶다. 맛은 함박스테이크와 오므라이스 둘 다 그럭저럭 괜찮았다. 다만 아쉬운 것은 그 때까지 아침 먹은 게 소화가 덜 되어서 아주 맛있게 먹지는 못했다는 것이다. 배가 고팠다면 지금보다 두 배는 더 맛있게 먹었을 텐데 말이다. 그래도 일본스러운 음식을 먹어볼 수 있어서 그것으로 만족했다. 

이제 점심도 먹었으니 슬슬 버스를 타러 가볼까? 버스를 타기 전에 1층에 편의점이 있어서 엄마에게 카페라떼(150엔, 1,638원)를 사 드렸다. 엄마가 지금은 건강 때문에 커피를 드시지 않지만 작년까지만 해도 점심 식사 후에 꼭 커피를 한 잔씩 드시는 습관이 있었다. 아빠도 생전에 커피를 좋아하셔서 아빠와 함께 다같이 여행을 할 때는 집에서 믹스커피를 가져가셔서 보온병에 넣어 가지고 다니시면서 드셨는데 지금은 혼자 드시니 그렇게 하기도 그렇고 해서 사드리는 것이다. 엄마가 커피를 드시고 각자 화장실을 다녀온 후 버스 승강장으로 나가 우리가 타야할 117번 버스가 서는 곳에서 기다렸다. 그런데 앉을 의자가 없어 내내 서서 기다려야해서 좀 불편했다. 현지인들은 대합실에서 기다리다가 버스 시간에 딱 맞추어 나와서 바로 타나 본데 우리는 버스를 놓칠까봐 조금 일찍 나왔더니 의자가 없질 않은가. 그렇다고 다시 대합실로 들어갈 수도 없고 버스가 올 때까지 내내 서서 기다리느라 다리가 좀 아팠다. 내 기억이 맞다면 아마도 오후 1시 5분차를 탔던 것 같은데 정확히 그 시간이 되자 117번 버스가 승강장으로 들어왔다. 기다리던 사람들이 하나 둘 버스에 오르고 우리도 짐을 싣고 버스를 타려고 했는데 우리나라 직행 버스처럼 당연히 짐을 버스 밑에 싣고 올라가는 줄 알고 버스 밑을 살펴보니 아무리 찾아도 문이 없었다! 알고보니 여기는 짐을 들고 올라가 버스 안에 마련된 짐칸에 놓아야 했다. 하는 수 없이 낑낑대며 짐을 버스 안으로 올리느라 이번에도 참 힘이 들었다. 어쨌든 힘든 짐 올리기가 끝나고 버스에 오르니 자동으로 '정리권'이라는 게 나왔다. 그래서 엄마 것까지 두 장을 들고 자리를 찾아 앉으니 그제서야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오키나와의 시외버스는 모두 거리 병산제라고 한다. 승하차 모두 앞문을 이용하며, 버스에 탑승하면 일단 정리권, 즉 어디에서 탑승했는지를 알려주는 티켓을 버스 탑승구의 자동발권기를 통해 받아야 한다. 그리고 나서 버스 기사가 있는 버스의 정면을 보면 디지털 차트가 있는데 그 곳에 나오는 금액을 보고 내릴 때 버스비를 내면 된다. 예를 들어 만약에 내가 받은 정리권에 3번이 써 있으면 디지털 차트에 나오는 3번의 금액을 내면 되는 것이다. 잔돈이 없어도 운전기사가 잔돈을 따로 잔돈을 거슬러 주지 않으므로 요금통 옆에 있는 1,000엔 지폐 동전교환기를 이용해 동전으로 바꿔서 내야 한다. 

자리에 앉아 창밖을 보는데 하필 오늘 비가 와서 바깥 풍경들이 온통 추적추적 내리는 비에 젖어 있었다. 나고시에 다 와서는 바다도 잠깐 볼 수 있었지만 역시나 비가 와서 에메랄드 빛의 아름답고 잔잔한 바다가 아니라 성난 파도가 쉴새 없이 몰아치고 흙탕물로 어지럽혀 있는 바다만 보일 뿐이었다. 아쉬웠지만 어쩔 수 있나. 조금 더 가니 시가지가 나오고 드디어 나고 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나고시는 오키나와 북부의 유일한 시이자, 오키나와에서 나하시 다음으로 두 번째로 큰 도시이다. 총 면적은 210제곱킬로미터로 서울시의 1/3에 해당하는 넓이이다. 일찌감치 삼산 시대부터 도시의 기능을 했으니 역사가 꽤 오래된 편이다. 크게 돋보이는 볼거리는 없지만 북부에서 유일한 중저가 숙소 밀집 지역인데다 여행자 식당이 아닌 서민 식당을 만날 수 있는 몇 안 되는 지역이라 북부를 여행하는 여행자들이 많이 찾는 도시이다.

우리는 북부의 최대 볼거리인 '츄라우미 수족관'을 가기 위해 나고시에 숙소를 예약했다. 내가 예약한 숙소는 나고 버스터미널에서 걸어서 10분 이내로 도착할 수 있는 숙소로 '센추리 호텔 리조트 오키나와 나고 시티(1박 168,053원, 조식 포함, 호텔스 닷컴 예약)'였다. 구글맵을 켜고 가보니 정말 나고 버스터미널에서 10분이 채 걸리지 않는 가까운 곳에 호텔이 있었다. 내일 추라우미 수족관에 갈 때도 나고 버스터미널에서 시외버스를 타야 해서 일부러 버스터미널 근처에 있는 호텔을 예약했다. 

 

호텔에 들어서니 로비가 아담하긴 했지만 그래도 깨끗하고 잘 정돈된 느낌이 들었다. 프론트에서 예약을 확인하고 방 배정을 받았는데 직원들도 대체로 친절해서 호텔에 대한 첫인상이 좋았다.  

넓은 방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2인용 침대, 작은 소파, 책상과 의자, 작은 냉장고, 전자렌지, TV, 에어컨 등 필요한 것은 다 갖추고 있었다. 

 

화장실도 작았지만 비데와 욕조를 갖추고 있었고 무엇보다 깔끔해서 맘에 들었다. 

방 구경을 마치고 호텔 가까이에 있는 21세기의 숲 비치를 구경해보기로 했다. 21세기의 숲 비치는 스포츠 시설이 복합적으로 모여있는 인공 비치로 바다색이 예쁜 곳이라고 해서 오늘 오후에 시간이 괜찮으면 해변에서 물놀이를 해볼까 했는데 비가 오락가락 하고 바람도 불어 날씨가 영 좋지 않았다. 그래서 아쉽게도 물놀이는 하지 못했고 공원 벤치에 앉아서 엄마랑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벤치에 앉아서 보니 파도가 세게 쳐서 그런지 바닷물도 흙탕물이었다. 벤치에 앉아 있는 동안에도 비가 계속 오락가락해서 다시 호텔로 돌아가야하나 생각했는데 비가 그쳐 한동안 오지 않길래 바다 쪽으로 길게 나 있는 길도 걸어보고 해변을 따라 나 있는 길도 걸어보았다. 해변을 따라 나 있는 길을 계속 걷다 보니 나고시 시민회관도 나오고 나고 시청도 나오고 21세기의 숲 체육관도 나왔다. 체육관에서는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학생들이 방과후 수업인지 아니면 체육관 프로그램인지는 모르겠지만 여러가지 활동을 하고 있었다. 마침 화장실이 급해서 선생님으로 보이는 여자분에게 화장실을 써도 되는지 물어보니 흔쾌히 된다고 해서 화장실에도 다녀왔다. 지붕이 있는 건물 공터에 쉼터처럼 넓은 평상도 있고 벤치도 있고 해서 벤치에 앉아서 좀 쉬었다 가기로 했다. 앉아서 엄마랑 이런저런 얘기도 하고 건물 안에서 학생들이 활동하는 모습도 보면서 쉬고 있었는데 기어이 다시 또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비가 좀 잦아들면 가기로 하고 비가 그치기를 기다렸는데 웬걸! 비가 점점 더 세차게 내리는 게 아닌가! 그래서 꼼짝도 못하고 한참 동안 벤치에 앉아 있어야 했다. 시간이 지나자 건물 안에서 활동하던 학생들도 부모님이 차로 데리러 와 하나 둘씩 집으로 돌아가고 이윽고 5시가 되자 선생님들도 체육관 문을 닫고 퇴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선생님들도  비가 너무 많이 와서 모두들 후다닥 뛰어 자신들의 차에 올라타 휑하니 집으로 돌아가고나자 이제 정말로 이 건물에 우리 밖에 남지 않았다. 오늘 하루종일 비가 오락가락해서 곧 그치겠지 하고 기다렸는데 한 시간을 넘게 기다려도 비는 그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더 세차게 쏟아지고 있고 날도 저물고 있는 데다 이제 저녁 먹을 시간도 다 되어서 여기서 마냥 비가 그치기를 기다릴 수는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우산을 쓰고 저녁을 먹을 '미야자토 소바'집을 찾아 길을 나섰다. 체육관에서 소바집까지는 걸어서 10분 정도 걸리는데 비바람이 불어서 그런지 길을 나선지 얼마 되지 않아 신발과 치마가 완전히 젖어버렸다. 그래도 가이드북에서 현지인 맛집이라고 얼마나 칭찬을 해 놓았던지 소바가 얼마나 맛있을까 기대를 하며 가니 그렇게 힘들지는 않았다. 

거센 비바람을 뚫고 드디어 소바집에 도착했다. 외관은 허름한데 식당 안으로 들어가니 꽤 넓은 공간에 테이블도 많았다. 그런데 테이블마다 빨간색 비닐 식탁보를 덮어 놓은 것이 꼭 우리네 시골 장터 국밥집같은 느낌이 들었다. 과연 맛집이라고 하더니 손님이 많은 편이었다. 이 식당은 특이하게도 종업원이 주문을 받지 않고 식당 안에 있는 자판기에서 메뉴를 고르고 결제를 하면 주문한 음식을 테이블로 가져다 주는 시스템이었다. 그래서 나도 자판기로 가 '갈비 소바(600엔, 6,552원)', '삼겹살 소바(600엔, 6,552원)'를 주문하고 음식이 얼른 나오기를 기다렸다. 

 

드디어 소바가 나왔다. 소바 면이 우리네 칼국수 면처럼 두꺼운 편이었는데 나는 이렇게 두꺼운 면도 좋아하니 일단 면발은 합격. 이렇게 두꺼운 면은 오키나와 북부 소바의 특징이라고 한다. 다음으로 국물을 한 입 떠서 먹어보았다. 그런데 웬걸! 가이드북에 현지인이 자부심을 가지고 추천하는 맛집이라고 하길래 기대를 많이 했는데 국물이 그렇게 시원하다거나 담백하다거나 하는 감칠맛이 별로 느껴지지 않아서 무척 실망스러웠다. 그냥저냥 가벼운 국물 맛이라고 할까? 어제 아하렌 비치에서 먹었던 소바와는 많이 달라서 좀 당황스러웠다. 가이드북에는 왜 맛집으로 소개가 된 건지 도통 모르겠다. 고명으로 올라간 고기 종류만 다를 뿐 국물맛도 똑같았고 고기에서도 약간 누린내 같은 것이 나는 것 같았지만 그래도 돈이 아까워서 먹기는 다 먹었다. 엄마도 어제 먹은 소바보다 못하다고 실망하시는 것 같았다. 그나저나 여기서 먹고 있는 손님들은 정녕 이런 소바맛을 좋아한단 말인가.

소바를 다 먹고 밖으로 나오니 다행히 그 사이 비가 그쳐 있었다. 날도 조금 어두워지고 이제 숙소로 돌아갈 시간이었다. 소바집에서 숙소까지는 도보로 약 10분 정도 걸리는 거리라 이곳저곳 구경도 하면서(사실 구경할 것은 별로 없었지만) 천천히 걸으니 어느 새 숙소에 도착했다. 아까 비를 맞으면서 옷이랑 신발이 모두 젖어서 무척 꿉꿉했기 때문에 얼른 샤워부터 했다. 샤워를 하고 나오니 개운하고 기분이 상쾌해졌다. 오늘은 버스를 타고 이동한 것 외에는 특별히 한 일이 없어서 그런지 그렇게 많이 피곤하지는 않았다. 

내일은 세계에서 두번째로 큰 규모를 자랑한다는 오키나와 북부의 관광 1번지 '츄라우미 수족관'을 가 볼 예정이다. 수족관은 제주도에 있는 '한화아쿠아플라넷'을 가 본 것이 전부인데 츄라우미 수족관은 얼마나 크고 넓을지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