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중국(2016)

베이징 여행기(6일차, 2016.8.6.토)-천단공원, 공왕부 저택

anna325 2018. 2. 7. 23:02

(이 글에서 설명은 '프렌즈 베이징-전명윤, 김영남'을 참고하여 썼다.)

 

내일은 중국을 떠나는 날이기 때문에 오늘이 여행 마지막 날이나 다름없다. 그래서 정한 여행지는 천단공원과 공왕부 저택이 있는 후퉁(골목)이다.

어제 아침으로 컵라면을 먹었는데 엄마가 맛있다면서 오늘 아침으로 또 먹자고 하셨다. 그래서 아침에 숙소 앞에 있는 구멍가게에서 컵라면을 사왔다. 나는 그저 그랬는데 엄마 입맛에는 잘 맞으시나 보다. 나는 어느 나라를 가서 먹어 보아도 우리나라 라면이 최고다.

 

 

 

지하철을 타러 가다가 어제 노점에서 사 먹었던 그 빵을 또 사 먹었다. 수첩에 가격을 적어 놓은 것을 보니 어제는 5위엔을 주었는데 오늘은 3위엔(약 534원)을 주었다. 아마도 내용물이 다른 것을 먹었나 보다.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이것도 맛있었을 것이다. 글을 쓰다 보니 문득 궁금해진다. 그 부부는 지금도 아침이면 늘 같은 자리에서 장사를 하고 있을까? 저녁에 올 때는 없는 걸 보니 아침에만 잠깐 장사를 하고 어디론가 가나 보다. 지금쯤은 돈을 좀 벌어서 작은 가게라도 차렸으면 좋겠다.

 

 

지하철에 있던 핸드폰 광고. 한류의 영향으로 송중기가 인기가 많은 듯 하다.

 

 

지하철을 타고 둥쓰역에서 텐탄둥먼역까지 가면 천단공원의 동문으로 바로 갈 수 있다.

천단공원은 명 영락제 18년인 1420년에 건설되어 대대로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곳이다. 현존하는 중국 최대 규모의 제단이라고 한다. 한나라 이후 모든 황제들은 매년 그 해 거둔 오곡을 하늘에 바치며 감사와 함께 다음 해의 풍작을 기원하는 추수감사제를 지내는 것이 하나의 의무였다. 중국인들은 전통적으로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지다라는 관념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땅의 영역인 황제의 궁전이나 땅의 신을 모신 지단 등 인간사 혹은 땅과 관련된 모든 구조물은 네모가 원칙이다. 반대로, 하늘신의 영역인 천단은 원형을 기본으로 한다. 그래서 천단공원의 원구단과 황궁우 등 주요 건물이 원형이거나 원형의 담장 안에 있는 것이다.

 

 

동문을 지나면 가장 먼저 볼 수 있는 천단공원의 상징, 기년전이다. 황제가 매년 곡식을 바치며 이듬해의 풍년을 기원하던 곳으로 제단인 기곡단 위에 사당인 기년전이 올라와 있는 형태이다. 쉽게 말해 원구단과 황궁우를 합쳐 놓은 곳이다. 원구단의 제사가 지극히 형이상학적이고 정치적인 의미, 즉 하늘의 뜻을 받아 인간계를 대리통치하는 황제의 역할을 강조했다면 기년전의 제사는 만백성의 어버이이자 현실의 통치자로서의 역할을 강조한다고 한다.

높이 38m, 직경 30m의 3층 원형 목조건물인 기년전은 건물 그 자체의 아름다움으로도 유명하다. 남색 유리기와는 황색 위주의 고궁박물원의 유리기와와는 다르게 한층 정갈하고 엄숙한 느낌을 준다.

 

 

기년전 내부의 화려함은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릴 정도로 유명한데 안쪽부터 바깥쪽까지 총 52개의 기둥이 3열에 걸쳐 원형을 그리며 배치되어 있다. 가장 안쪽에 있는 4개의 기둥이 가장 굵은데 사진으로 보는 것처럼 금박으로 무늬를 그려 넣어 더욱 화려하다. 첫번째 열의 4개 기둥은 4계절, 두 번째 열의 12개 기둥은 12달, 세 번째 열의 36개 기둥은 농사의 필수 요소인 24절기에 우주 생성의 원리 12가 더해진 숫자라고 한다.

기년전을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건축 철학이 더욱 명확하게 보인다. 네모(땅)진 담장 안에 원형(하늘)인 기년전, 그리고 그 안에 4계절과 1년 12달, 24절기가 모두 응축된 하나의 소우주가 펼쳐진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고대 인도와 티베트 불교에서 생각하는 우주의 도형적 표현인 만다라와 거의 흡사한 모습이라고 한다.

 

 

기년전 천정의 모습

 

 

기년전 안에 배치된 기둥의 모습

 

 

 

 

기년전을 둘러싸고 있는 둥근 난간

 

 

한치의 오차도 없이 아름다운 곡선을 그린다.

 

 

 

 

기년전 앞 마당에 있는 자료관 같은 곳에 들러 구경도 하고 잠시 앉아 쉬었다. 쉬면서 찍은 처마.

 

 

기년전 앞 마당(?)이라 하기에는 매우 넓은 광장. 자금성만큼은 아니었지만 사람이 그래도 꽤 많았다.

 

 

나오면서 다시 사진도 찍고.

 

 

다음으로 간 곳은 황궁우이다. 하늘신, 즉 상제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단층 원형의 목조 건물로 하늘에 제사를 지낼 때에는 역대 황제들의 위패도 이곳으로 옮겼다고 한다. 여기는 회음벽과 삼음석이 유명하다는데 나는 가이드북을 제대로 읽지 않았는지 그냥 지나치고 말았다. 회음벽은 황궁우 외곽을 감싸고 있는 원형 담장인데 벽에다 대고 소리를 지르면 벽을 타고 돌아 반대편까지 또렷이 들린다고 한다. 삼음석은 황궁우 앞바닥에 깔린 3개의 돌인데 돌을 두드리면 소리가 반사되어 울린다고 한다. 나는 이곳도 두 번째 가는 것인데 나의 무지로 한 번도 실험을 해보지 못해서 아쉽다.

위의 사진은 난간에 섬세하게 조각되어 있는 기둥들. 돌의 종류가 무엇인지 궁금하네. 혹시 대리석인가?

 

 

황궁우 안의 모습. 기년전과 비슷하지만 약간 다른 모습이다. 정면과 양 옆으로 위패를 모신 공간이 있다.

 

 

황궁우의 화려한 천정

 

 

원구단으로 올라가는 길이다.

 

 

원구단을 둘러싸고 있는 역시나 희고 아름다운 난간

 

 

 

 

원구단의 모습이다. 원구단은 황제가 하늘에 기도를 올리던 곳으로, 하늘을 형상화한 거대한 원과 황제만의 공간이라는 뜻의 3층 기단으로 이루어져 있다. 기단의 각 층은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수이자 하늘을 상징하는 숫자인 아홉 개의 계단으로 이루어져 있다. 각 단의 난간에 있는 기둥은 1단에 108개, 2단에 72개, 3단에 36개인데 이 또한 고대 중국인들의 숫자배열 방식으로 모두 9의 배수이다.

3단에 오르면 가운데에 볼록 솟은 '천심석'이 있다. 황제가 하늘에 고하는 제문을 읽었던 자리라고 한다. 제문을 다 읽으면 그 자리에서 불에 태웠는데 재가 하늘로 오르면 상서로운 징조로 여겼다고 한다. 천심석을 보러 온 사람들은 다들 하늘을 향해 소리를 지르는데 공명현상이 생기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한편 천심석을 가운데 두고 석판들이 원형을 그리며 방사형으로 뻗어 나가는데 첫 번째 줄은 9개, 두 번째 줄은 18개...마지막 아홉 번째 줄은 81개의 석판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 9는 절대수를 의미하고 절대수는 황제만이 가질 수 있다는 것을 나타낸 것이다.

우리도 천심석에 올라가보았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사진이 없는 걸 보니 올라가진 않은 것 같다.

 

 

원구단을 보고 재궁으로 가는 길에서 보았던 나무들이다. 하지만 길을 잘못 들었는지 결국 재궁을 찾지 못하고 동문 쪽으로 나오고 말았다.

 

 

 

 

동문으로 나오면서 보았던 '북재생정'이라는 곳이다. 설명을 읽어보니 제사를 지낼 때 가축을 도축하고 음식을 장만하던 곳인 것 같다. 사람들이 입구에서 줄을 서 있어서 옆에 서양인에게 물어보니 입장료는 무료인데 여권을 제시해야만 입장권을 나누어 준다고 한다. 입장료를 따로 내야하는 줄 알고 그냥 갈 뻔 했다. 다행히 여권을 가지고 와서 들어갈 수 있었다. 하루 1000명만 입장이 가능하다고.

 

 

통로 한 쪽에서 사람들이 장기를 두고 있었다. 숙소 근처 공원에서도 엊그제 경산공원에 가다가 보았는데 중국에서 어르신들은 장기를 두며 여가를 보내나 보다.

 

 

북재생정에 전시되어 있던 물건들

 

 

이건 아마도 황제와 황후가 입던 옷인것 같다. 황제는 키가 매우 컸었나 보다.

 

 

 

 

황제가 앉았던 의자인 듯

 

 

나오다가 본 '칠성석'. 북두칠성을 의미한다고 한다. 마침 물주는 시간인지 스프링쿨러에서 물이 나오고 있었다. 원래 7개였는데 청 건륭제가 청나라 황실의 고향인 동북지방을 잊지 말자는 뜻에서 돌덩이 하나를 더 옮겨두어 8개라고 한다. 그런데 가까이서 보아도 진짜 돌인지 만든 모형인지 잘 모르겠다. 돌 색깔이 오묘하다.

 

 

다시 동문으로 나오는 길이다. 재궁을 가지 못해 아쉬웠지만 다시 그 곳으로 갈 생각을 하니 엄두가 안나 그냥 나왔다. 중국은 어느 관광지를 가나 너무 넓어서 건물 간에 거리가 너무 멀기 때문.

엄마와 엄마의 가방까지 메고 가는 아빠의 뒷모습이 보인다. 중국을 여행할 때 제일 먼저 갖추어야 할 것은 비자도, 돈도 아닌 바로 체력이다.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이긴 한데 중국은 특히 튼튼한 체력이 필요하다. 땅이 넓어서 그랬는지 가는 유적지마다 지나치게 넓다. 여행 6일째로 체력이 떨어질 때도 된데다가 여기도 역시나 지나치게 넓어서 좀 힘들었다. 다리가 아픈 엄마의 가방까지 메고 다닌 아빠가 존경스럽다.

 

 

점심을 먹어야 하는데 천단공원 주변에 마땅히 점심을 먹을만한 식당이 없었다. 그래서 이리저리 헤매다가 간신히 홍교시장 건물의 푸드코트에 들어갔다.

 

 

음식점의 개수가 많은 편이었고 파는 음식의 종류도 다양했다.

 

 

오늘도 더운 날이라 목이 말라 청포도 주스도 주문했다. 한 잔에 13위엔(약 2,314원). 시원하고 맛있었다.

 

 

우리가 주문한 건 오리고기가 들어간 면과,

 

 

양저우식 볶음밥이다.(합쳐서 42위엔, 약 7,476원) 면은 좀 심심했고 볶음밥도 그저 그랬다. 역시 볶음밥은 숙소 근처 식당이 최고 중에 최고이다.

 

 

지하철 역에서 송중기를 다시 만났다. 꽤 인기가 많은 듯하다.

 

 

지하철을 타고 텐탄둥먼 역에서 베이하이베이 역으로 갔다. 왜냐하면 베이징의 후퉁을 보기 위해서이다. 후퉁이라 하면 뒷골목을 뜻한다. 한때 베이징에는 이름이 있는 후퉁만 3600개였고 이름이 없는 후퉁까지 합치면 소털보다 많았다고 한다. 원래 더러움, 중세의 대명사였던 후퉁이 주목을 받기 시작한 건 베이징 올림픽 전후라고 한다. 중국은 베이징 올림픽 개최를 계기로 대대적인 도시 정비를 발표했는데 그중에는 후퉁을 모두 철거하고 뉴타운으로 만들겠다는 계획도 포함이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고고학회를 비롯한 많은 문화 인사들이 이 계획에 우려를 나타냈고 많은 반대가 있어 결국 보존 가능한 후퉁 지역을 확대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고. 그 후 낡은 후퉁은 번듯한 고전 가옥으로 탈바꿈했고 내부도 현대식으로 꾸며 지금은 옛스러운 정취가 많이 사라졌다고 한다. 이곳 후퉁의 스치하이 지역은 청나라 때 왕족들과 고위관료들의 저택들이 모여 있던 최고급 주택가였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도 잘 보존된 저택들이 이곳저곳에 많이 남아있고 관광객들이 점점 늘면서 카페와 식당, 옷과 기념품 등을 파는 가게들도 많이 들어섰다고 한다.

 

 

관광객들이 늘면서 관광객을 상대로 인력거 투어가 생겼다고 하는데 우리는 비쌀 것 같아 타지 않고 구경만 했다.

 

 

스치하이 일대에서 가장 유명한 왕족의 저택인 '공왕부 저택'에 들렀다. 입장료는 40위엔(약 7,120원). 이 저택은 청나라 시대인 1777년에 건축되었다고 한다. 원래는 건륭제의 총애를 받던 권신 화곤의 사저였는데 화곤은 건륭제 사후에 부정축재 죄목으로 자결을 명령받아 이 저택은 국가에 귀속되었다고 한다. 그 후 가경제는 이 저택을 경군왕 영린에게 하사했고, 도광제 또한 후계자로 점찍은 공왕 혁흔에게 하사했다고 한다. 그래서 저택 이름이 '공왕부' 저택이 되었다고. 혁흔은 황제가 되지는 못했지만 나약했던 함풍제와 권력을 분점하며 황제 못지 않은 권력과 부를 누렸고 이 저택을 자금성 버금가는 화려함으로 꾸몄다고 한다.

 

 

건물 안에 있던 가구와 도자기들

 

 

공왕부의 정원. 바위를 쌓아 올려 만든 인공산도 있었다.

 

 

널찍한 정원

 

 

장랑 옆으로 대나무도 있었다.

 

 

장랑에 앉아 잠깐 쉬기도 했다.

 

 

이곳은 바위를 쌓아 올려 만든 인공산 '적취암'이다. 오른쪽에 불빛이 비치는 곳이 비운동이라는 동굴의 입구이다. 동굴 안에는 거꾸로 쓴 '福'자가 있는데 건륭제의 친필(혹자는 건륭제 황후의 친필이라 한다.)이라 한다.

 

 

작은 사원인데 여기에서 '福'자가 써 있다. 중국 사람들은 '福'자를 많이 좋아하나 보다.

 

 

작은 오솔길

 

 

진심으로 중국스런 건물과 붉은 등

 

 

이 곳은 연못 안에 지어진 정자, '호심정'이다. 연못에 연꽃이 많아 운치를 더해준다. 비록 꽃은 졌는지 연잎만 무성했지만. 연못 안에는 잉어들도 많았는데 아이들이 호기심에 과자를 던져두면 와서 먹고 가고는 했다.

 

 

연못 옆의 긴 장랑. 이 저택의 주인은 아마도 매일 새벽 이 장랑을 거닐며 아침 산책을 하지 않았을까?

 

 

 

 

호심정 안에 있던 잉어와 오리

 

 

 

 

 

호심정 연못과 연결되는 물길

 

 

복을 비는 리본이 묶여 있던 건물

 

 

이 멋진 이층 건물에서는 누가 살았을까?

 

 

 

 

 

 

연리지 같은 나무

 

 

공왕부를 구경하고 밖으로 나와 골목을 이리저리 구경하며 돌아다녔다. 중국 후퉁의 전통 가옥들은 문을 열고 들어가면 안에 작은 마당이 나오고 'ㅁ'자 구조로 되어 있어 마당을 중심으로 빙 둘러 방이 있는 구조인 것 같았다. 작은 대문 안을 들여다 보면 안에는 어김없이 마당이 있고 그 주위로 방이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면 얼마나 넓은지 모르겠지만 밖에서 보기에는 집이 굉장히 좁아 보였다. 그 작은 집들이 옆집과 다닥다닥 붙어서 미로같은 골목을 만들었다. 골목이 어찌나 미로처럼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는지 아무리 찾아도 아까 내렸던 베이하이베이 역을 찾을 수가 없었다. 결국에 후해와 전해를 헤매다가 물어물어 간신히 베이하이베이 역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날은 이미 어두워졌고 엄마는 힘드신지 짜증을 내시고 나도 힘들고.

지금도 중국의 후퉁을 생각하면 '미로'와 '짜증'이 제일 먼저 생각날 정도다. 중국의 후퉁을 갈 때는 조심해야 한다. 길을 잃고 헤매다가 체력과 인내심이 바닥날 수 있다.

 

 

숙소로 돌아오다가 엊그제 갔었던 인생 볶음밥을 먹었던 식당에 다시 들렀다. 힘도 들고 배도 고프고 지금 이순간 이만한 곳도 없지. 이건 만둣국인데 만두소가 정말 조금 들어 있고 만두 자체도 매우 작았다. 깔끔한 맛으로 7위엔(약 1,246원) 이었는데 성인이 하나만 시켜서 먹기에는 조금 적은 양이었다.

 

 

짜잔~ 인생 볶음밥 다시 대령이요~ 적당히 고소하고 담백하고 간도 딱 맞고. 환상적인 볶음밥인데도 단돈 13위엔(약 2,314원). 이건 성인 혼자 충분히 먹을 수 있을만큼 양도 많았다.

 

 

숙소로 오다가 근처 구멍가게에서 사이다가 너무 먹고 싶어서 스프라이트를 샀다. 3위엔(약 534원). 단숨에 마시고 나니 텁텁했던 입 안이 깔끔하게 정리되었다.

 

오늘은 이렇게 사이다를 마시며 잠자리에 들었다. 공왕부까지는 좋았으나 후퉁 구경에서 체력이 바닥난 힘든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