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일본(2019)

오키나와 여행기(에필로그)

anna325 2023. 8. 4. 10:15

여행이 끝나고 한국으로 돌아온 지 2주 정도 되었을 때 토카시키 섬에서 보냈던 나에게 쓴 엽서가 도착했다. 80년대 스타일의 서류 봉투같은 편지 봉투와, 우체국에서 찍었던 다양하고 예쁜 모양의 도장과, 90엔짜리 새가 그려져 있는 우표, 그리고 오키나와에서의 행복했던 추억까지 고스란히 나에게 전해졌다. 엽서를 보니 오키나와 여행하면서 있었던 일들이 떠올랐고 그렇게 앉아 한참을 추억에 젖었다.

그리고 그 해 11, 나는 건강한 딸아이를 출산했고 그 아이는 무럭무럭 자라서 지금 37개월이 되었다. 얼마나 말을 잘하는지 말로는 아이를 이길 수가 없고 체력은 또 얼마나 좋은지 같이 놀다보면 40대인 엄마는 금세 지쳐서 드러누워야 하는 지경이 되었지만 그래도 날마다 깨를 볶으며 행복하게 살고 있다.

가끔 엄마와 오키나와 여행 이야기를 하는데 오키나와 여행에서 제일 좋았던 게 무엇이냐고 여쭈어보면 한결같이 토카시키 섬의 아하렌 비치에서 해수욕을 했던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물이 어쩜 그렇게 맑고 투명한지 정말 아름다웠다고 말이다. 누군가 나에게도 그런 질문을 한다면 나도 엄마와 같은 대답을 할 것이다. 그 날의 기억은 은은한 비취빛의 맑은 바다, 하얀 구름이 몽실몽실 떠 있던 파란 하늘, 즐겁게 해수욕을 즐기던 사람들, 밝은 햇살을 받아 따뜻했던 바닷물, 모두 한 폭의 그림같은 풍경으로 내 기억 저장소 한 켠에 자리잡고 있다.

물론 비가 억수같이 쏟아져서 힘들었던 날도 있었고, 하루 종일 걷는 날이 많아서 숙소에 들어가면 쓰러지듯 침대에 누워 잠이 들었고, 토카시키 섬의 낡은 숙소에서는 한 숨도 못자서 다음 날 너무나 피곤했던 적도 있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일들마저도 모두 다 괜찮았던 즐겁고 소중한 여행이었다.

딸아이가 요즘 부쩍 내 핸드폰에 있는 사진보는 것을 좋아하는데 어쩌다 오키나와 여행 사진을 보면 자기는 왜 없냐고 물어보곤 한다. 그러면 "서윤이가 엄마 뱃속에 있을 때 할머니랑 둘이 갔어."라고 이야기해주는데 아이는 그 때마다 다음에는 자기도 같이 오키나와에 다시 가보고 싶다고 이야기한다. "그래. 엄마도 나중에 서윤이랑 할머니랑 다시 가고 싶어. 우리 꼭 같이 가보자."라고 말해주면 흡족한 미소를 띠곤 하는데 그 모습이 얼마나 귀여운지 모르겠다.

그래. 좋아! 다음에는 우리 모녀 3대가 뭉쳐 해외 여행을 한 번 해보자구! 아이를 낳으면서 아이가 없었던 때와는 다른 신세계를 살고 있듯이 아이와 함께하는 해외 여행도 뭔가 더 재미나고 스펙터클한 신세계를 보여줄 것만 같다.

이렇게 해서 나의 오키나와 여행기도 마무리를 하려고 한다. 여행은 늘, 그것이 짧은 여행이든 긴 여행이든, 국내이든 해외이든 나의 가슴을 뛰게 하고 설레게 한다. 그리고 여행이 끝나면 또 이렇게 두고두고 추억들을 꺼내볼 수 있어서 좋다. 그래서 여행은 언제나 옳다.